제도 개선보다 운영 주체 혁신이 더 시급하다

입력 2014-02-20 01:33


(下) 정부 대책, 구멍은 없나

‘대통령도 질책한 문화재 부실관리 실태’ 시리즈 1편이 보도된 지난 18일 한 독자가 전화를 걸어왔다. 30년 넘게 문화재 수리현장에서 일했다는 이 독자는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지 않으면 비리가 근절되지 않을 것”이라며 “온갖 편법으로 공사를 따낸 업체는 이익을 남기기 위해 가능한 싸구려 재료로 대체하려고 하니 부실공사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문화재청이 지난 17일 브리핑한 올해 업무계획에는 문화재 현장에 만연한 각종 비리를 미연에 방지하겠다는 내용이 다수 포함됐다. ‘문화유산 안전과 수리품질 고도화’ ‘합리적 문화유산 보존체계 강화’ ‘문화유산 미래가치 창출’을 3대 과제로 삼아 정책을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고질적인 병폐가 되풀이될 것이라는 우려도 많다.

◇문화재 관리대책의 허와 실=문화재청은 국가대표 문화재 관리에 대한 총체적 부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상시모니터링 시스템을 보완키로 했다. 또 야외에 노출돼 있는 중요문화재 특별점검을 4월까지 실시해 훼손도와 위험도 등에 따른 맞춤형 관리를 추진할 방침이다. 특별점검은 국무조정실, 문화체육관광부, 안전행정부, 문화재청, 지방자치단체가 참여한다.

전국 건조물 문화재 888건을 대상으로 실시 중인 특별점검은 현재 90% 이상 진척을 보이고 있다. 4월까지 점검이 마무리되면 정부 차원의 대책이 나올 예정이다. 하지만 울산 반구대암각화 논란에서 보듯 주무부처의 입장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고 정치적인 합의가 이뤄져 혼선을 빚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부처마다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공감대를 이루는 방안을 도출하기가 쉽지 않다.

상시모니터링 시스템도 관리체계 개편 없이는 효율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대부분 문화재의 현장 관리는 지자체가 맡고 있어 문화재청과의 유기적인 협의가 필요하다. 숭례문도 보존·수리는 문화재청이 맡고, 실제 관리는 서울시가 맡아 화재 때 책임공방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문화재청에 지방청을 따로 두어 관리체계를 일원화하는 게 시급하다.

◇수리기술자 제도 개선은 임시방편=문화재 수리기술자 자격시험을 필기시험 위주에서 실기시험 및 심층면접(단청, 실측설계, 보존과학 분야)을 추가키로 했다. 해마다 현장조사를 실시해 자격증 불법대여자가 3차례 적발 시 자격증을 취소하던 것에서 2차례로 처벌기준을 강화할 방침이다. 부실시공 업체도 ‘삼진아웃’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또 재료 원산지 등을 일반에 알리는 ‘수리현장 공개의 날’ 운영, 논란이 됐던 경력공무원 자격시험 일부과목 면제 폐지, 전통재료 업체 인증제 도입, 기술인력 능력에 따라 수리참여를 결정하는 ‘경력관리제’ 도입, 입찰가격 외에 기술력·품질 등을 평가하는 입찰제도 개선 등을 추진할 계획이다. 이 역시 지금까지 거론돼 오던 문제점을 임시방편으로 내놓은 것이라는 지적이다.

제도가 문제가 아니라 운영 주체의 혁신 없이는 개선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황평우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장은 “입찰과정에서 교수와 제자, 업체와 공무원이 결탁돼 담합을 일삼고, 문화재 소유주가 공사비의 20%를 부담하고 국가에서 80%를 지원하는 보조사업의 경우 브로커까지 등장하는 실정인데도 이런 부분에 대한 개선책은 없어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땅에 떨어진 신뢰회복이 관건=감사원 감사와 경찰 조사를 동시에 받고 있는 문화재청은 두 조사 결과가 나와야 체질개선 등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 있을 것이라는 입장이다. 전국에 산재한 1만1306건의 문화재 중 실제로 허술하게 관리되고 있는 사례는 별로 없는데도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고 토로하고 있다.

조금만 잘못된 부분이 있어도 질타가 쏟아지는 것은 그만큼 문화재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다는 방증이다. 추락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서는 뼈를 깎는 각오로 환골탈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나선화 문화재청장은 “최대의 위기에 처한 상황이지만 잘못된 것이 있으면 모두 털어내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각오로 혁신을 통해 거듭나겠다”고 말했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