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남호철] 소프트타깃 테러

입력 2014-02-20 01:33


이집트 시나이 반도의 국경도시 타바에서 폭탄 테러를 당한 한국인 성지순례단 버스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했다. 유리창이 모조리 깨지고 폭탄이 터진 앞부분의 지붕이 날아간 채로 앙상한 차체만 드러낸 모습은 폭발의 위력이 얼마나 셌는지 짐작케 했다.

자폭 테러범이 저지른 소행에 4명의 소중한 목숨이 희생됐다. 한국 사람이라서 테러범이 그랬던 것 같지는 않고 그 시간에 관광버스가 오니까 그러지 않았나 싶다고 목격자들은 전했다. 특정인을 노린 것이 아니라 무작위의 관광객에게 테러를 저질렀다는 얘기다. 그동안 이집트에서 이슬람 무장세력이 군인과 경찰, 고위 공무원, 국가시설 등을 공격 대상으로 삼았던 것과는 다른 행태였다.

주로 외국인 관광객이 대상

왜 관광객에게 직접 테러를 저지른 것일까. 워싱턴포스트(WP) 등 외국 언론들은 무르시 대통령 축출 이후 과도 정부를 주도하고 있는 군부에 의해 억압받고 있는 이슬람주의자들이 게릴라식의 대(對)정부 투쟁을 벌이다가 이제는 관광객을 노려 이집트 관광산업 위축을 꾀하는 전략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는 분석을 전했다. 공격의 방향을 ‘소프트(soft)한 대상(target)’으로 바꿔 군부에 물리적 압박을 줌과 동시에 경제적인 타격도 가하겠다는 것이다.

정부기관 등을 대상으로 하는 ‘하드타깃’ 테러와 달리 ‘소프트타깃’ 테러는 민간인에 대한 정치적 목적의 테러 행위를 일컫는다. 군경과의 대치 등 큰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도 파급효과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에 반정부 세력들이 주로 이용하는 방법이다. 이번 테러를 저질렀다고 주장하는 ‘안사르 베이트 알마크디스(ABM·성지를 지키는 사람들)’도 3년 전 결성된 이후 이스라엘 공격에 초점을 맞췄다가 무르시 대통령이 물러난 뒤 방향을 틀어 과도 정부의 관광산업 등에 공격을 집중하고 있다.

이집트 경제의 핵심은 관광산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해 관광객 수가 2007년 처음으로 1000만명을 돌파한 뒤 3년 만에 1470만명까지 치솟았다. 관광산업이 국내총생산의 10% 이상 차지하고 관광산업에 종사하는 국민은 전체 고용인구의 13%를 차지하고 있다. 2010년에는 관광 수익이 120억 달러(약 13조원)에 달할 정도로 호황을 누린 적도 있다.

이집트는 치안부터 챙겨야

타바를 비롯해 시나이 반도 동남부 지역도 관광산업의 효자 역할을 톡톡히 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다는 시나이산(山), 홍해가 갈라지는 모세의 기적이 행해졌다는 수에즈 운하, 그리스정교회의 성 캐서린 수도원 등 성지순례 코스가 있어 외국인 관광객들이 꾸준히 찾은 것이다. 하지만 독재자 호스니 무바라크 퇴진 이후 치안 공백이 발생한 2011년부터 망가지기 시작해 지난해 관광객은 946만명까지 줄었다.

이번 버스 폭탄 테러 사건 이후 이집트 정부는 관광산업의 추락을 막기 위해 ‘같은 사건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며 파장 차단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테러 공포를 해소하기엔 역부족인 상황이다. 당장 성지순례를 가장 많이 가는 국가 중 하나인 우리나라가 곧바로 특별여행경보를 내렸고, 성지순례를 계획했던 여행사와 관광객들은 일정을 무더기로 취소하고 있다. 이번 사건이 전 세계에 대대적으로 보도된 만큼 다른 나라 관광객도 이집트 여행을 꺼릴 게 틀림없다. 이집트 경제에 타격을 주겠다는 테러범들의 의도가 어느 정도 먹혀들어가는 모양새다.

관광객의 안전이 담보되지 않으면 수렁에 빠진 이집트 경제가 회생하는 건 요원하다. 이집트 정부로서는 테러 사건이 재발하지 않을 것이라고 막연하게 강조하며 ‘급한 불 끄기’에 나서기보다는 하루빨리 치안을 바로잡는 것이 우선일 듯싶다.

남호철 국제부장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