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방에 뜨는 달 궤도까지 계산했을까… 논산 명재고택에 숨어있는 ‘한옥의 과학’

입력 2014-02-20 01:40


하얀 창호지에 어른거리는 그림자. 사랑채가 드리운 그림자는 황토로 빚은 굴뚝을 오롯이 삼켰다. 그 고즈넉한 풍경에 홀려 명재고택 작은사랑방의 동창을 열어젖혔다. 어둠 속에서 도열하듯 서 있는 장독대의 검은 독들이 별빛을 토해내듯 반사한다. 300년 대(代)를 이은 종부의 손맛은 독 안에서 밤새 숨 쉬고 있을 것이다. 장독대 너머 낮은 구릉에는 느티나무 고목이 든든하게 서 있다. 계룡산과 대둔산 사이 능선에 둥실 솟아 오른 보름달, 그 나무 가지 뒤에 숨어 고택을 기웃거린다.

한옥은 과학이다. 그러나 명재고택 만큼 품격 있는 과학도 드물다. 문이나 창을 여닫을 때마다 공간의 미학을 연출하는 충남 논산시 노성면의 명재고택. 조선 숙종 때 학자인 명재(明齋) 윤증(尹拯·1629∼1714)의 가옥이다. 소론의 거두인 명재는 임금이 무려 18번이나 벼슬을 내렸으나 끝내 사양하고 초야에 묻혀 살았다. 그래서 ‘백의정승’으로 불렸다. 평생 초가에서 살아온 스승을 위해 후손과 후학들은 60칸짜리 한옥을 지었다. 하지만 명재는 살아생전 한번도 그리로 발걸음을 하지 않은 대쪽같은 선비였다.

노성산 옥녀봉을 병풍처럼 두른 명재고택은 솟을대문은 물론 담장도 없어 다른 사대부 집안의 가옥에 비해 겉모습은 소박한 편이다. 본래 솟을대문이 있었으나 노론과 소론의 대립이 극심하던 19세기 초에 소론 영수의 집안 동태를 살피기 위해 노론이 명재고택 옆으로 향교를 이전해오자 웃어른들이 모든 것을 보여주자며 솟을대문과 담장을 없애버렸다고 한다. 덕분에 사랑채에 앉으면 소나무가 멋스런 둔덕을 비롯해 연못과 마을이 파노라마 그림처럼 펼쳐진다.

명재고택의 첫 번째 과학적 원리는 사랑채의 왼쪽으로 난 중문에 숨어있다. 문간에 내외벽을 설치해 방문객이 아녀자들의 공간인 내부를 볼 수 없도록 차단한 것이다. 그러나 안채 대청마루에 앉으면 내외벽 아래로 난 좁은 공간을 통해 방문자의 신발이 보인다. 종부는 신발이 가죽신이냐 짚신이냐에 따라 누가 손님을 응대할지를 결정했다고 한다.

초례청으로 이용되던 안방 대청마루에는 바라지창이 달려있다. 바라지창의 송판은 나무 결이나 옹이구멍의 모양조차 대칭이 되도록 정성을 쏟아 만든다. 이 바라지창을 열면 장독대가 보이고 그 뒤로 담, 또 그 뒤로 소나무와 하늘이 이어진다. 여백의 미를 살리기 위한 것이리라. 장독대는 바라지창 왼쪽으로 치우쳐 있다. 무심코 보는 모든 것들이 치밀한 과학적 설계의 결과물인 것이다. 바라지창 옆에는 명재의 13세손인 윤완식(59)씨가 직접 한지에 붓으로 쓴 수제달력이 걸려 있다. 요즘 시대 보기 드문 운치를 자아낸다.

명재고택의 두 번째 과학적 원리는 안채와 곳간채 사이에 숨어있다. 유체의 속력이 증가하면 압력이 감소하는 ‘베르누이의 원리’를 적용해 두 건물을 나란히 두지 않고 북쪽으로 갈수록 좁아지게 배치했다. 여름에는 남쪽에서 불어온 바람이 북쪽의 좁은 통로를 빠져나가기 때문에 그 속도가 빨라져 주변이 서늘해진다. 겨울에는 반대로 바람이 남쪽의 넓은 통로를 통해 빠져나가 매서운 북풍을 피할 수 있도록 했다. 덕분에 곳간채의 북쪽 끝 창고는 여름철에도 서늘해 냉장고 역할을 했다.

명재고택 안채 곳곳에는 아녀자들을 배려한 공간이 숨어있다. 안채 마루방이 대표적이다. 이곳은 아녀자들이 차를 마시며 수다를 떠는 수다방 역할을 했다. 수다방의 동쪽 문을 열면 낮은 담장 너머로 해가 뜨고 달이 뜨는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바깥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조선시대 여인들에게 수다방의 동쪽 문은 전망대 역할을 한 셈이다.

조부부터 손자까지 3대가 함께 기거하던 사랑채에는 공간의 미학이 집중되어 있다. 사랑채는 조부가 기거하는 큰사랑방을 중심으로 우측에 대청이 있고 좌측에는 정자를 사랑채 속으로 들여놓은 특이한 형태의 누마루가 있다. 또 그 뒤로 작은사랑방과 안사랑방이 문으로 연결되어 있다.

안사랑방에 앉아 작은사랑방 동창을 통해 보는 바깥 풍경은 명재고택 종손이 자랑하는 최고의 풍경화이다. 하얀 연기를 내뿜는 작은 굴뚝과 키 낮은 담장을 비롯해 사랑채 처마가 근경을 이루고, 600여 개의 장독과 수령 400년인 세 그루의 느티나무와 한 그루의 느릅나무 고목이 중경을 연출한다. 여기에 느티나무 가지 사이로 보이는 해와 달, 그리고 별은 원경을 자처한다. 사방이 트인 큰사랑방에서 보는 풍경도 운치 있다. 동쪽 문을 열면 고졸한 느낌의 대청마루 창 밖으로 270년 묵은 씨간장을 보존한 장독들이 종가의 역사를 상징한다.

명재고택의 세 번째 과학적 원리는 큰사랑방과 작은사랑방을 연결하는 문에 숨어있다. 이 문은 네 짝의 미닫이지만 가운데 두 짝을 좌우로 밀면 여닫이가 되는 ‘안고지기’이다. 큰사랑방을 확장해 공간을 넓게 쓰기 위한 도편수의 지혜가 담겨있다고나 할까. 이 안고지기를 떼어 큰사랑방 중간에 설치하면 방이 두 개로 나눠지는 파티션 역할도 해 명재고택에 적용된 아이디어들이 놀랍기만 하다.

명재고택의 품격은 사랑채 누마루에서 완성된다. ‘도원인가(桃源人家)’와 ‘이은시사(離隱時舍)’ 편액이 걸려있는 누마루는 아늑한 공간이지만 문이나 창을 열면 사방이 열린 공간으로 단박에 변신한다. 오른쪽 창을 열면 장방형의 연못이 누마루 안으로 불쑥 들어오고, 정면의 분합문을 들어올리면 둔덕의 솔숲과 정원의 배롱나무가 한 폭의 산수화를 연출한다. 누마루 아래 댓돌 위에 작은 돌로 금강산을 형상화한 석가산(石假山)과 해시계 보는 자리인 일영표준(日影標準)도 눈길을 끈다.

300년 세월의 무게가 오롯한 명재고택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삶을 살아온 명재 윤증의 품격이 곳곳에서 느껴지는 명품한옥이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구소련 대통령이 2008년에 명재고택을 찾아 향나무를 심은 까닭도 명재고택이 러시아까지 알려진 명문가이기 때문이다.

논산=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