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 리조트 참사] 후배 구하려 다시 들어갔다 끝내… 생사 갈림길서 피어난 선·후배 情

입력 2014-02-19 02:33 수정 2014-02-19 18:55

체육관 지붕이 내려앉는 데는 단 10초도 걸리지 않았다. 동아리 공연을 보던 500여명의 학생들은 천장에서 ‘꽝’ 하는 소리가 나자 일제히 고개를 위로 들었다. 이후 천장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사회를 보던 이벤트 업체 직원 최모(43)씨는 “다 나가!”라고 소리 쳤다. 학생들은 출입문을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 최씨는 현장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사망했다.

현장은 아비규환이었다. 하지만 학생들은 2차 붕괴의 두려움을 무릅쓰고 무너진 구조물 속에서 한 명이라도 더 살리기 위해 힘을 모았다. 선배는 후배를, 남자는 여자를 구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일부는 자신의 몸을 돌보지 않고 구조활동을 벌이다 숨을 거둬 안타까움을 더했다.

학생회 집행부 김모(25)씨는 “사고 현장을 빠져나갔던 이들이 다시 돌아와 울부짖으며 친구들을 구하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파편에 맞아 부상을 입은 학생들도 현장에서 친구를 구출하기 위해 맨손으로 힘껏 구조물을 옮겨 지붕 잔해에 깔린 이들을 꺼냈다. 얼굴이 지붕 잔해 더미에 가려 보이지 않는 이들은 손을 뻗어 끌어당겼다. 이들의 노력으로 10여명 정도가 현장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이날 사고로 숨진 부산외대 미얀마어과 학회장 양성호(25)씨는 1차 붕괴 당시 사고 현장을 벗어났지만 후배들을 구하기 위해 다시 들어갔다가 변을 당했다. 그는 사고 직후 주변에 있는 후배들과 함께 대피했지만 몇몇 후배가 보이지 않자 다시 현장으로 들어갔다. 이후 추가 붕괴로 철제 구조물이 양씨를 덮쳤다. 양씨는 끝내 현장을 빠져나오지 못했다.

일부 남학생들은 사고 발생 직후 학생들이 몰려들면서 출입문이 막히자 창문을 뜯어내고 신입 여학생부터 차근차근 밖으로 내보냈다. 사고 당시 무대 앞쪽에 앉아 있던 A양(19)은 “지붕이 무너지는 순간 구조물에 맞아 기절했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남학생들이 구조물을 들어내고 있었다”라며 “남학생들이 자신보다 먼저 여학생을 바깥으로 나갈 수 있게 도와줬다”며 흐느꼈다.

10여분 후 지붕이 무너지는 소리가 멈췄다.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해 구조작업을 벌였던 중앙재난구조본부 울산112화학구조센터 유의태(56) 센터장은 붕괴된 사고 현장을 보자마자 ‘샌드위치형 합판 붕괴’를 직감했다. 중앙부가 하중을 이기지 못하고 ‘V’자 모양으로 심하게 꺼져 있었기 때문이다. 유 센터장은 “당시 건물은 이미 기울어 있었고 추가 붕괴가 심각하게 우려됐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초반 구조작업을 벌일 때만 해도 곳곳에서 희미한 신음 소리가 들렸지만 중심부에 접근할수록 적막이 흘렀다. 지붕이 ‘V’자 쐐기 형태로 무너지며 사망자가 가장 많았던 지역이다.

한 구조대원은 “건물이 무너진 가운데 지점에서 시신 4구가 한꺼번에 나왔다”고 말했다. 유 센터장은 당시 상황을 떠올리며 “가운데로 갈수록 신음소리 하나 없이 무서울 정도로 고요했다”고 말했다. 구조대원들은 손으로 무너진 지붕 잔해들을 걷으며 “거기 누구 있나”라고 외치며 수색을 벌였으나 더 이상 생존자가 없다고 보고 18일 오전 9시20분쯤 구조작업을 중단했다.

경주=김유나 조성은 기자 spr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