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이 과장했으니 괜찮다’는 법원… 車연비 소송 소비자 잇단 패소

입력 2014-02-19 01:31

현대·기아자동차의 연비 표시가 과장됐다며 소비자들이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잇달아 패소 판결이 나오고 있다. 현대·기아차가 연비 과장 문제로 해외 소비자들에게 수천억원대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합의한 가운데 나온 판결이다.

김모(55)씨는 2012년 5월 기아자동차 K5 하이브리드를 구매했다. 기아차는 차량에 ‘연비가 리터당 21㎞’라고 표시했다. 김씨는 실제 연비가 이에 미치지 못하자 ‘기아차가 과장 광고를 했다’며 소송을 냈다. 하지만 서울중앙지법 민사95단독 고권홍 판사는 김씨가 기아차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고 18일 밝혔다. 같은 법원의 이순형 판사도 지난해 12월 박모(23)씨 등 2명이 현대자동차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했다.

법원은 국내 자동차 연비 소송에서 일관된 논리로 원고 측 주장을 배척하고 있다. 법원은 먼저 광고에 ‘표시연비와 실제연비는 차이가 있다’는 표시가 있는 점을 강조했다. 보통의 소비자라면 체감 연비가 낮은 것을 알 수 있다는 설명이다. 이어 법원은 ‘연비 측정 기준이 도심인지 고속도로인지 표시되지 않았다’는 원고 측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측정 기준이 이미 에너지소비효율이 낮은 도심이라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이 도심은 1975년 미국 LA의 교통 흐름을 반영한 것이라 2000년대 한국과 비교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법원은 또 “당시 모든 업체들이 동일한 규정을 기준으로 연비를 표시해 문제가 없다”고 봤다. 법무법인 예율의 김웅 변호사는 “다른 회사들도 같이 과장했으니 괜찮다는 논리는 납득이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현대·기아차는 지난해 말과 올해 초 연비 과장 문제로 북미·캐나다 소비자들에게 4800억여원의 보상금을 지급하고 합의하기로 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국에서는 연비를 측정할 때 외부 온도, 도로 조건 등 다양한 조건을 고려한다. 미국에서는 현대·기아차가 이 규정을 고의로 어겼는지가 논란이 돼 과장 광고 여부가 쟁점인 국내 소송과는 출발점이 달랐다. 서울 지역의 한 변호사는 “미국에서는 민사 소송도 배심제라 현대차 측 패소 가능성이 높았던 점도 합의금 지급의 이유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나성원 기자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