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증, 업체에 돈 받고 빌려주는 건 공공연한 비밀

입력 2014-02-19 01:32


(中) 이름값 못하는 장인들

지난 12일 문화재청이 주관한 ‘문화재 수리체계 제도개선’ 공청회에서 토론에 나선 A씨는 문화재 보존·보수기술 자격증을 빌려줬다가 2006년 국정감사에서 문제가 됐다. 당시 국감에서 불법 대여자로 30여명이 거론됐지만 문화재청의 안일한 대처로 흐지부지되고 말았다. 현재 모 대학 교수인 A씨는 문화재 전문가로 버젓이 활동하면서 이번 공청회까지 참여했다.

A씨는 18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오래전 일이라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당시 국감은 문화재 수리체계의 전반적인 문제를 다룬 것이지 개인 비리를 적발한 것이 아니다”고 말했다. A씨는 부인하고 있지만 문화재 장인이나 수리기술자가 자격증을 공사업체에 돈을 받고 불법 대여하는 관행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만연한 자격증 불법 대여=문화재 수리업체는 자격증을 가진 수리기술자를 4명 이상 의무적으로 채용해야 한다. 전국의 수리업체는 412개이고 수리기술자는 1542명이다. 산술적으로는 한 업체당 3.74명으로 수요와 공급을 엇비슷하게 맞출 수 있다. 하지만 자격시험이 필기위주여서 기술자가 실무경험은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다보니 업체에서는 자격증만 빌리고 실제 업무는 자체 경력자를 활용하는 실정이다.

기술자는 자격증을 업체에 빌려주고 다른 일을 할 수 있어 ‘꿩 먹고 알 먹기’인 셈이다. 숭례문 복구공사에 참여한 홍창원 단청장 등 문화재 기술자 15명이 자격증을 업체에 빌려주고 돈을 받은 혐의로 최근 경찰에 불구속 입건된 사건은 문화재 현장에 만연한 비리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홍씨는 2010년부터 최근까지 3개 업체에 자격증을 빌려주고 3780만원을 받은 혐의를 받고 있다. 홍씨 사건은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는 애기도 나온다.

◇인간문화재 선정 잡음과 심사위원 논란=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인간문화재)는 41개 분야 59명이다. 장인 선정 과정에서도 매번 시비가 끊이지 않고 있다. 2006년에는 당시 정권 실세의 여동생이 가야금 산조 분야 장인으로 지정돼 의혹이 일었다.

지난달 20일 ‘배첩장(褙貼匠)’ 보유자로 인정 예고된 홍종진씨의 자격을 두고서도 논란이 불거졌다. 홍씨가 1966년 이 분야에 입문한 뒤 47년간 보존·전승에 힘써왔다는 점 등이 고려됐으나 이력과 심사과정이 석연치 않다며 관련 단체에서 이의를 제기한 것이다.

한국표구협회(회장 손용학)가 지난 4일 나선화 문화재청장에게 보낸 재심 요청서에 따르면 홍씨는 배접을 배운 이력과 활동 경력 등이 분명치 않은데도 보유자로 인정 예고됐다. 표구협회는 “그 배경에는 홍씨의 며느리가 문화재청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것이 작용한 게 아니냐”고 의구심을 드러냈다. 홍씨의 며느리는 3년 전 해당 부서에서 근무하다 지금은 다른 부서로 자리를 옮긴 상태다.

또 홍씨를 심사한 4명의 심사위원 가운데 전문가는 문화재학을 전공한 1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섬유패션디자인, 임학, 임산생명공학 등 전통배접과는 무관해 공정성이 결여됐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난해 ‘채화칠장(彩畵漆匠)’ 보유자 인정 예고에서도 대상자 이의식씨의 기법이 일본식이라는 비판과 함께 심사위원 4명 중 칠 전문가는 1명뿐이라는 지적까지 제기돼 결국 인정 예고가 철회됐다.

◇장인들의 도덕성 해이=인간문화재로 지정된 후에도 금품수수 등으로 물의를 빚어 자격이 박탈된 경우도 있다. 2000년대 이후 갖가지 불미스러운 이유로 무형문화재에서 해제된 장인은 4명이다. 2001년 목조각장으로 지정된 허길량씨는 같은 업계 종사자와 명예훼손 소송에 휘말려 실형(징역 8개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고 2004년 해제된 케이스다.

또 1997년 판소리 장인으로 지정된 조상현씨는 국악경연대회 심사와 관련해 경연 참가자로부터 돈을 받은 혐의로 벌금형을 받아 2007년 자격을 박탈당했다. 1997년 유기장으로 지정된 한상춘씨는 기량 저하와 전승활동 태만으로 2009년에 해제되고, 2002년 남사당놀이 보유자로 지정된 박용태씨는 공연심사와 관련 벌금형으로 2013년 인간문화재에서 해제됐다. 장인들의 도덕적 해이가 얼마나 심한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이광형 선임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