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안동현] 위험회피형 사회
입력 2014-02-19 01:36
1970년대 말에서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이과에서 입학성적이 가장 높았던 학과는 전자공학과나 물리학과였다. 물론 당시에도 의대의 입학성적이 낮은 편은 아니었지만 지금과 같이 전국의 모든 의대를 한번 돌고 그 다음에 서울대 공대라는 의대 편식 현상은 없었다. 문과 역시 당시엔 법학과와 상경계열, 인문대학들이 앞자리를 다투었다. 지금처럼 최상위권 학생들이 앞 다투어 로스쿨로 달려가고 대학은 로스쿨로 가기 위해 스펙을 쌓는 기관으로 전락하진 않았다.
경제학부 학생들과 면담해 보면 가장 선호하는 직업이 앞서 말한 로스쿨로 진학해 법조계로 진출하는 것과 행시를 패스해 공무원으로 진출하는 것이다. 그 다음이 한국은행, 금융감독원 등 금융 관련 공기업이다. 사기업의 경우도 재보험과 같이 민영화된 뒤에도 독점적 지위를 갖춘 기업들을 선호하고 그 뒤에야 삼성과 같은 대기업들이 위치한다. 이런 선호 성향이 단순히 서울대만의 얘기는 아닌 것 같다.
이런 극단적 위험회피 성향이 우리 젊은 세대들의 현주소다. 경제학에서는 합리적 경제주체를 위험회피적이라고 가정하니 그 자체를 문제 삼을 수는 없다. 아무도 고위험-저수익을 추구하진 않을 테니까. 경제학에서 제기하는 위험과 수익의 상충관계는 기대수익은 위험의 증가함수라는 점이다. 경제주체는 이런 상충관계를 인식하고 자신의 위험회피 성향에 따라 적절한 위험을 부담해 기대수익을 추구하게 된다.
문제는 경제주체 모두가 저위험만을 부담하려 할 경우다. 개별 경제주체들의 극단적 위험회피 성향 자체는 앞서 얘기한 대로 문제가 되지 않지만 이러한 현상이 집단화되면 국가경제 전체의 위험 대비 수익구조가 악화된다. 즉, 동일한 위험을 부담하더라도 기대할 수 있는 수익이 높지 않게 된다. 누군가는 위험을 무릅쓰고 고수익을 추구해 경제에 활로를 뚫어줘야 하는데 모두 ‘그건 네가 해라’라는 식으로 위험을 전가하다보면 성장을 기대할 수 없다. 또 이렇게 위험 대비 수익구조가 악화되면 위험회피 성향을 더 가속화시키는 악순환이 발생할 우려가 있다.
어쩌다 이렇게 집단적 위험회피 현상을 겪게 되었을까? 첫 번째로 아직도 저위험-고수익 기회가 있다는 막연한 기대감이다. 의대로 진학해 의사가 되거나 로스쿨 나와서 법조계로 진출할 경우 직업의 안정성과 수익,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으리란 기대감이다. 물론 현실은 녹록지 않다. 최근 파산전문회사 CEO와 법무법인 대표변호사에게 들은 얘기다. 매년 개인병원의 30% 정도가 파산해 매물로 나온다고 한다. 법조계 역시 1년에 쏟아지는 1500명의 새내기 법조인 중 군입대하는 인원까지 포함해 최대 500명 정도만 법조계에서 소화할 수 있다고 한다. 과거 의사와 변호사는 진입장벽이 높아 ‘지대추구(rent seeking)’가 가능한 대표적 직업군이었지만 오히려 이로 인해 우수 인력들이 유입되고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저위험-고수익 공식이 깨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반인들은 아직도 과거에 형성된 이런 기대감에 머물러 있는 듯하다.
둘째는 저수익이라도 좋으니 위험을 부담하지는 못하겠다는 성향이다. 이는 97년과 2008년, 두 차례의 금융위기가 남긴 상처다. 특히 97년 외환위기는 당시 경제뿐만 아니라 이후 세대에 엄청난 트라우마를 남겼다. 아버지나 삼촌의 파산 또는 실직을 목격하면서 생존이 훨씬 절박한 목적함수라는 점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첫째, 아직도 우리 사회에 저위험-고수익 영역이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 이를 경제학에서는 이례(anomaly)라고 하는데 이런 영역이 존재할 경우 자원 배분이 저위험 분야로 쏠리게 된다. 둘째, 위험 대비 수익성을 높여줘야 한다. 물론 분자인 기대수익을 인위적으로 높일 수는 없지만 분모인 위험을 줄여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실패할 경우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재기의 기회를 줄 수 있는 경제 시스템이 담보될 때 집단적 위험회피 현상을 경감시킬 수 있고 성장 엔진도 다시 점화될 수 있을 것이다.
안동현(서울대 교수·경제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