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일 관계개선, 일본 변화가 관건
입력 2014-02-19 01:41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지난해 12월 야스쿠니신사 참배 이후 중단됐던 한·일 간 고위급 외교채널이 재가동되기 시작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아베 총리 집권 이후 극도로 경색된 양국 관계 정상화의 출발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병기 주일 대사는 17일 도쿄에서 사이키 아키타카 일본 외무성 사무차관을 만났으며, 이하라 준이치 일본 외무성 아시아·대양주 국장은 18일 방한해 우리 당국자들과 회동했다. 이틀간의 연쇄접촉에서 양측은 두 나라 관계개선 방안을 깊숙이 논의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단시간에 해법을 찾기가 쉽지 않겠지만 외교 당국자들이 다시 머리를 맞댔다는 것 자체가 기대감을 갖게 한다.
한국과 일본이 박근혜정부 출범 이후 1년 동안 단 한번도 정상회담을 갖지 않았을 정도로 관계단절을 지속하고 있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애증의 역사를 갖고 있지만 안보와 경제 등 다방면에서 공조를 지속해온 이웃 국가가 소 닭 보듯 하는 것은 양쪽 모두에게 손해다. 미국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4월 한·일 순방을 앞두고 양국관계 개선 중재 의사를 밝힌 것은 이런 점에서 나쁘지 않다.
그러나 현 시점에서 분명한 것은 관계 악화의 근본 원인이 일본의 과거사 도발이란 점에서 일본이 결자해지(結者解之)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과거사 문제에 관해 일본이 구체적이고도 선제적인 조치를 내놓지 않고서는 관계개선의 실마리를 풀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동안 일본 당국은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희망한다면서도 과거사 역주행을 계속해 왔다. 아베 총리도 박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을 원한다면서 끊임없이 한국과 한국민을 자극하는 언행을 일삼았다.
관계개선을 위해서는 총리를 비롯한 정치인들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일본군 위안부 강제 연행 부정, 역사교과서 왜곡, 독도 영유권 주장 등 각종 도발에 대한 일본의 진정성 있는 조치가 이뤄져야 한다. 식민 지배와 침략에 대한 책임과 반성의 뜻을 표시한 무라야마 담화, 일본군의 위안부 강제 연행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 담화의 유지는 기본이다. 일본과 한국을 연이어 방문한 에드 로이스 미국 연방 하원 외교위원장이 위안부 등 일본의 과거사 왜곡을 비판한 것은 국제사회가 결코 일본 편이 아니라는 것을 뜻한다.
앞으로 미국 정부가 중재를 하면서 양국을 상대로 설득·압박 외교를 하겠지만 한·일간 현안을 양비론적 시각에서 보면 안 된다. 우리한테 과거사와 영토문제는 선택이 아니라 진실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일본이 책임 있는 조치를 취할 경우 우리도 전향적인 자세를 보일 필요가 있다. 한·일 정상회담이 성사되기 전이라도 비정치적 교류·협력은 유지, 확대하는 게 좋다. 그것이 실리외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