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래 칼럼] ‘1995 통일희년 담론’을 넘어서야
입력 2014-02-19 01:36
“통일문제에 관한 한 초조해하지 말고 덤벙대지 말고 결코 포기하지 말고 서둘러라”
한반도에 새바람이 불고 있다. 신년연설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통일 대박론’을 피력했고 북한의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도 남북대화 필요성을 강조했다. 내일부터 재개되는 3년여 만의 남북 이산가족 상봉은 합의에 이르기까지 곡절도 많았지만 변화의 시작을 알리는 분명한 징표라고 하겠다.
더불어 요즘 여기저기서 등장하는 통일담론은 통일과 관련한 논의가 다시 공론화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사실 언제부턴가 우리 주변에서 통일담론은 슬그머니 사라지고 말았다. ‘우리의 소원은 통일 꿈에도 소원은 통일’로 이어지는 동요가락도 잊혀진 게 아닌지 모르겠다.
원인은 여럿일 것이다. 북한의 반복되는 도발과 안하무인식의 일방적인 주장에 마음도 지치고 관심사의 우선순위에서도 밀렸을 터다. 분단의 장기화가 그런 현상을 부추겨 자연스럽게 통일을 부담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이래저래 통일담론이 제대로 뿌리내리지 못한 탓이다.
1950년대만 하더라도 통일은 우리 사회의 주요 관심사였으나 60년대 군사정권이 들어서면서 금기어로 전락했다. 통일담론은 어디까지나 정권의 전유물이었고 관리 대상일 뿐이었다. 1987년 6월항쟁 이후 비로소 통일담론은 시민권을 확보한다. 더불어 교계도 통일담론의 생산 주체로 등장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는 1988년 2월 총회에서 ‘민족의 통일과 평화를 위한 교회의 선언’을 채택했다. 선언문에서 NCCK는 그간 교회의 사회적 관심이 ‘선 민주 후 통일’ 선에 멈춰서 있음을 고백하고 분단 50주년을 맞는 1995년을 ‘통일희년(禧年)’으로 선포했다. 희년은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난 그 이듬해, 즉 50년째 되는 해를 뜻한다(구약성서 레위기 25:10). 바로 이 희년에 빗댄 통일희년 선포는 통일을 교인들의 구체적인 관심사로 끌어당겼다. 일부 교회에서는 통일공화국 헌법 초안을 모색하는 등 도처에서 희년을 말하고 통일을 노래했다.
하지만 구체적으로 설정한 1995년이 아무런 변화 없이 지나면서 기대와 관심은 급속히 소멸하고 말았다. 통일희년을 기계적인 숫자로만 이해한 것이 가장 큰 패착이었다. 통일희년을 숫자적으로만 보면, 예컨대 1995년에 통일을 이루지 못할 경우 다음 통일희년이 돌아오는 2045년까지 마냥 기다려야 한다는 논리에 갇히고 만다. 통일희년의 본질, 해방과 복권을 말하는 희년의 참 뜻을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통일희년은 분단의 폐해로부터 해방, 이데올로기 대립으로 억눌렸던 모든 이들의 복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북한 주민의 인권과 북한이탈주민(탈북민)에 대한 차별, 좌우의 대립 등에 이르기까지가 통일희년의 관심사다. 통일희년 선포는 통일을 이룬다는 결과중시형의 변설이 아니라 어떤 통일, 누구를 위한 통일인가 등 과정과 내용에 더 관심을 쏟겠다는 고백이었다.
또한 통일희년은 한반도만을 사정거리로 삼은 것이 아니다. 대립과 반목으로 점철돼온 동아시아의 일그러진 근현대사를 바로 펴는 계기가 통일 한반도를 시작으로 펼쳐져야 한다는 주장이다. 한반도의 분단은 일본제국주의 침탈의 결과물이자 냉전의 희생물이기에, 통일은 침략과 대립의 역사를 종식시키는 역내의 해방과 복권으로 마름돼야 하는 것이다.
이번 남북 이산가족 상봉 재개를 계기로 교계를 중심으로 ‘1995 통일희년 담론’을 곱씹으면서 이를 전향적으로 넘어서는 노력이 확산됐으면 한다. 물론 역내 모든 이의 해방과 복권을 위한 통일희년을 추구하는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당장 상대가 예측하기 쉽지 않은 북한인 데다 무엇보다 우리의 약한 의지는 통일에 대한 관심을 꾸준히 유지하는 데 장애가 되기 때문이다.
라틴어 격언에 ‘천천히 서둘러라(Festina lente)’라는 말이 있다. 형용모순이지만 적어도 통일 문제에 관한 한 초조해하지 말고, 덤벙대지 말고, 결코 포기하지 말고 서둘러 임하라는 매우 적절한 경구가 아닐까 싶다. 실패한 ‘1995 통일희년 담론’을 뛰어넘는 지혜를 구하고 노력하는 데 교계와 우리 사회 모두가 힘을 쏟아야 하겠다.
조용래 수석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