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김진홍] 대북 투명성 원칙
입력 2014-02-19 01:35
#2011년 6월 1일, 남북관계사(史)에 희한한 사건이 벌어졌다. 북한 국방위원회 대변인이 조선중앙통신 기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베이징에서의 남북 비밀접촉 사실을 폭로한 것이다. 내용은 충격적이다. 남측이 천안함 폭침 사건과 연평도 포격 사건을 더 이상 거론하지 않겠으니 제발 정상회담을 위한 비밀접촉을 갖자고 제안해 그해 5월 9일부터 베이징에서 남북 접촉이 이뤄졌다고 북측은 밝혔다. 이어 남측 참석자는 김태효 청와대 대외전략비서관, 홍창화 국정원 국장, 김천식 통일부 정책실장이며, 이들은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북한의 사과 문제가 타결되면 정상회담을 위한 장관급회담을 5월 하순에 열고 6월 판문점에서 1차 정상회담, 8월 평양에서 2차 정상회담, 이듬해 3월 서울에서 3차 정상회담을 갖자고 제의했다고 주장했다.
며칠 뒤 추가 폭로가 이어졌다. 북한 국방위 정책국 대표가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접촉이 결렬 상태에 이르자 김태효가 돈봉투를 우리 손에 쥐어주려 했다. 우리가 즉시 쳐던지자 김태효 얼굴이 벌게졌다”고 말했다.
일차적으로는 비밀 유지를 전제로 이뤄진 접촉 내용을 상세하게 까발린 북한의 행태에 비난이 쏟아졌다. 동시에 이명박정부의 저자세도 도마에 올랐다. 이명박정부는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사과를 받아내기 위한 접촉이었으며, 돈봉투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설득력은 약했다.
노무현정부 때인 2006년 10월에는 노 전 대통령 측근인 안희정(현 충남도지사)씨가 대통령 밀사 자격으로 베이징에서 북측 인사와 비밀리에 만났다. 한 달 뒤 이 사실이 알려져 정치권에 파란이 일었다.
#지난 14일 판문점 평화의 집에서 열린 2차 남북 고위급 접촉을 계기로 남북관계에 훈풍이 불고 있다.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예정대로 열리고, 박근혜 대통령과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 간 직통 대화 채널이 구축된 점은 고무적이다. 북한조차 “민족적 단합과 평화 번영, 자주 통일의 새 전기를 열어나갈 의지를 확인했다”고 평가했다.
당초 북측은 비공개 접촉을 원했으나 남측이 공개를 주장해 관철시켰다고 한다. 대북접촉은 투명하게 이뤄져야 한다는 박 대통령의 의지를 읽을 수 있다. 올바른 방향이다. 이명박·노무현 전 대통령도 투명한 대북정책을 강조했었다. 그러나 정상회담 유혹에 빠져서인지 비밀접촉에 나섰다가 망신당하거나 곤욕을 치렀다. 박 대통령이 유념해야 할 대목이다.
김진홍 논설위원 jh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