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기 내란음모 1심 유죄] 웃으며 법정 들어선 이석기, 선고 순간 어금니 꽉
입력 2014-02-18 02:31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은 “징역 12년에 자격정지 10년을 선고한다”는 재판장의 주문이 나오자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애써 무덤덤한 표정이었지만 입가에 미세한 떨림까지 감출 수는 없었다. 인정할 수 없는 판결에 대한 분노를 속으로 삼키는 듯했다. 법정에 들어설 때 여유로움과는 대조되는 표정이었다.
이 의원은 17일 오후 1시57분 짙은 곤색 양복에 노타이 차림으로 수원지방법원 110호 법정에 들어왔다. 무죄를 확신한 듯 가벼운 미소를 띠며 방청석에 자리한 지지자들에게 가볍게 목례했다. 통진당 이정희 의원을 비롯한 변호인단은 일어서서 이 의원을 맞이했다. 재판장이 피고인들의 이름을 부르며 출석 여부를 확인할 때는 고개를 돌려 재판장을 쳐다봤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이 의원의 표정은 오후 2시부터 2시간15분간 선고가 진행되면서 잿빛으로 변했다. 재판장은 일부 국가보안법 혐의를 제외한 이 의원의 모든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했다. 다른 피고인들과 변호인단은 굳은 표정으로 선고를 들었다. 이 의원은 선고 시간 내내 피고인석 정면의 벽을 응시하다가 유죄를 인정하는 대목마다 재판장을 쳐다봤다.
이 의원에게 중형이 선고되자 재판장의 목소리와 취재기자들의 타자소리만 들리던 법정의 적막함이 깨졌다. 이 의원이 방청객에게 손을 흔들며 구속 피고인 통로로 빠져 나가자, 한 남성 지지자가 “정치 법원 부끄럽지도 않으냐”며 소리를 질렀다. “이게 무슨 재판이냐” “의원님 힘내세요” 등의 지지자들의 고함이 쏟아졌다. 법정 경위들이 지지자들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피고인 중 한명의 부인으로 추정되는 여성은 “내 남편 돌려놔”라며 오열하다가 법정 안에서 실신했다. 30대 남성은 법관 통로에서 재판부에게 달려들다가 법정경위의 제지를 받았다. 김칠준 변호사는 선고 직후 “참담하다”며 “정해진 결론에 일사불란하게 꿰어 맞춘 느낌을 지울 수 없다”고 말했다.
법정 바깥도 아수라장이었다. 보수시민 단체와 이 의원의 지지자들의 집회가 동시에 열리면서 각자 외치는 구호가 뒤섞였다. 이 의원 등 피고인들이 탄 호송차량이 법원 정문을 나설 때 시위가 극에 달했지만 물리적 충돌은 없었다.
정치권은 이 의원 유죄 선고에 각기 다른 평가를 냈다. 새누리당은 “국가를 부정하고 전복을 기도한 행위에 대한 유죄판결은 당연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새누리당 소속 장윤석 국회 윤리특위원장은 “민주당이 그동안 검찰 기소에 이어 법원 판결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해서 이 의원의 제명안 처리를 미뤄 왔다”며 이 의원 제명안 신속처리를 주장했다. 민주당은 이윤석 수석대변인은 서면브리핑에서 “국민 상식에 반하고 시대 흐름과 동떨어진 행위에 대한 사법부의 판단이 있었다”고 논평했다. 통진당 홍성규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참담하다”며 “사법부까지 박근혜정권의 영구집권 야욕 앞에 충성을 맹세했다”고 맹비난했다. 정의당 이정미 대변인도 “사법부 역사에 오점으로 기록될 무리하고 부적절한 판결”이라고 비판했다.
수원=정현수, 엄기영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