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버스 폭탄 테러] “손꼽아 기다리던 여행이었는데”… 유족·진천중앙교회 표정
입력 2014-02-18 02:33
“그렇게 손꼽아 기다리고 자랑하시던 성지순례였는데….”
이집트 성지순례 중 버스 폭탄 테러로 숨진 김홍열(64·여)씨가 살던 충북 진천군 진천읍 한 아파트 3층. 17일 오전 현관 틈 사이로 김씨의 딸 윤모씨의 울음소리가 끊임없이 새어나왔다. 핼쑥한 표정으로 현관문을 열고 나온 김씨의 둘째사위 권순영(41)씨는 “지난 명절에 뵈었을 때 성지순례 가게 됐다고 정말 좋아하셨다”며 “너무 힘드니 심경은 묻지 말아 달라”고 고개를 떨궜다.
정오가 조금 지나 김씨의 일터 동료 조순제(65·여)씨가 찾아왔다. 조씨는 김씨와 함께 알로에 방문판매 일을 해 왔다. 조씨는 “김씨가 평소에 성지순례를 정말 가고 싶어 했다”면서 “여행 경비를 모으려 계도 열심히 했다고 들었는데 이런 일이 생겨 가슴이 내려앉는 기분”이라고 울먹였다. 그는 “김씨는 평소에도 교회 일이라면 발 벗고 나선 사람이었고 봉사활동도 정말 많이 다녔다”고 덧붙였다.
김씨 유족을 제외한 나머지 피해자 가족들은 이른 아침부터 속속 진천중앙교회로 모여들었다. 교회 5층에 차려진 긴급 상황실에서 오전 10시부터 대책회의가 진행됐다. 다른 신도들도 교회 곳곳에 모여 입을 다문 채 침통한 표정으로 텔레비전만 응시했다.
교회 2층 식당에서는 자원봉사자 5명이 모여 밥을 짓고 국을 끓였다. 점심시간이 됐지만 식당은 썰렁했다. 갓 지은 밥은 먹는 사람이 없어 금세 푸석푸석해졌다. 교인들은 경황이 없는 탓에 밥 챙겨 먹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한 봉사자가 “이런 때일수록 밥이라도 잘 먹어야지”라고 말하자 잠시 웃음이 일었지만 곧 비통한 분위기로 돌아갔다. 다른 봉사자는 “나는 성지순례를 가고 싶어도 비싸서 못 갔는데 이렇게 될 줄은…”이라며 말을 아꼈다. 신도들은 이번 성지순례를 위해 약 300만원씩을 낸 것으로 알려졌다.
오후 1시50분쯤 테러로 경상을 입은 신도 15명이 무사히 이스라엘에 입국했다는 속보가 전해지자 곳곳에서 안도감과 초조감 섞인 탄성이 흘러나왔다. 신도 윤정희씨는 “성지순례 간 사람들과 다 친한데, 어젯밤 뉴스를 보고선 잠을 잘 수 없었다”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일부 신도들 사이에 숨진 김씨 외에 한 명이 더 위독하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불안감이 증폭되기도 했다. 이들은 현지 병원에 입원한 신도들의 상태를 확인하느라 휴대전화를 들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얼마 후 일부 부상자들이 열악한 상황에 처해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불안이 고조됐다. 부상자 최정례(66·여)씨의 사위 윤모(39)씨는 오후 4시30분 열린 기자회견에서 격앙된 목소리로 “장모님이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16시간째 지혈만 하고 있다고 했다”고 전했다. 최씨는 버스 앞쪽에 타고 있다가 무릎 아래에 여러 개의 파편이 박히는 부상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오후 7시부터 교회 1층에 차려진 분향소에서 조문이 시작됐다. 담담한 표정으로 분향소에 들어섰던 한 여성은 김씨의 영정을 보자마자 “어떡해, 어떡해”하며 울음을 터뜨렸다. 가장 먼저 조문을 한 김현숙(65·여)씨는 “새벽에 딸 전화를 받고서야 알았다”면서 “참담해서 할 말이 없다”고 입을 닫았다.
진천=정부경 홍성헌 박세환 기자 vick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