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집트 버스 폭탄 테러] 괴한 버스 계단 오르는 순간 ‘꽝’

입력 2014-02-18 03:40

테러 순간 재구성

폭탄 테러를 당한 한국인 성지순례단 버스 잔해는 처참했던 당시 상황을 그대로 드러냈다. 앞부분이 모두 날아간 채 검게 탄 버스 뼈대만 봐도 폭발의 위력이 얼마나 셌는지 짐작하게 한다.

17일(현지시간) 이집트 당국 발표에 따르면 폭탄 테러는 20대 남성 자살 폭탄 테러범의 소행으로 추정된다. 하니 압델 라티프 이집트 내무부 대변인은 AFP통신에 “경찰이 사건 직전 CCTV 등을 분석한 예비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일부 관광객들이 짐을 싣기 위해 버스에서 내렸고, 그때 한 남성이 버스로 걸어왔다”면서 “그가 세 번째 계단을 디뎠을 때 폭발이 일어났다”고 밝혔다. 목격자들의 진술을 종합하면 관광 가이드들이 출국 수속을 마치고 다시 버스로 돌아올 때 테러범이 함께 탑승해 자살 테러를 한 것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테러범의 시신은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16일 오후 2시40분쯤 충북 진천중앙교회 소속 성지순례 관광객 31명과 한국인 가이드 2명, 이집트인 2명(운전기사 1명, 가이드 1명)이 탄 노란색 관광버스가 이집트 동북부 시나이 반도 타바 국경검문소 앞에 섰다. 이스라엘로 들어가기 위해 이집트 쪽 접경지역인 타바에서 출국 수속을 밟으려던 참이었다.

버스 중간쯤 앉아 있던 노순영씨는 한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우리 현지 가이드가 출국 수속을 위해 내렸다가 다시 버스에 탄 뒤 20대로 보이는 괴한 1명이 뒤따라오더니 버스 안에서 폭탄이 터졌다”고 말했다. ‘펑’ 하는 소리와 함께 버스 앞쪽이 순식간에 화염에 휩싸였다. 운전사를 포함해 버스 앞쪽에 자리했던 한국인들이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현지 가이드를 맡았던 제진수씨가 괴한을 제지했다는 진술도 나왔다. 문희정씨는 “줄무늬 옷을 입은 괴한이 버스에 타려고 하자 가이드들이 밀어냈으며, 그가 버스 밖으로 나간 직후 폭발이 일어났다”고 말했다. 정강남씨는 “괴한이 자기 배에 폭발물 같은 걸 차고 버스에 올라 가이드가 그게 뭐냐고 말하는 순간 폭탄이 터졌다”고 했다. 미세한 부분에서는 차이가 있지만 제씨가 테러범을 제지한 덕분에 버스 앞부분에서 폭탄이 터져 인명 피해가 그나마 줄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대목이다.

관광객들의 대피 상황은 긴박했고 부상자들의 모습은 처참했다. 주미영씨는 “폭발 직후 총소리가 들려 버스 안에 숨어 있는데 불길이 버스 전체로 번져 정신없이 창문으로 뛰어내렸다”고 말했다. 차기호씨는 “버스 뒷자리에 앉아 있어 제일 늦게 빠져나왔는데 2~3초만 늦었더라면 나도 어떻게 됐을지 모른다”며 “나중에 병원에서 보니 피투성이가 된 여성이 실려 왔는데 숨진 김홍열씨였다”고 울먹였다. 현장을 처음 목격한 아흐메드 알리 의사는 “다리 한쪽이 잘린 한국인 시체가 눈앞에 보였다”고 전했다.

백민정 모규엽 기자 min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