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찬규] 자위권 확대해석하려는 일본

입력 2014-02-18 01:36


일본을 보통국가로 전환시키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지난 1월 NHK 방송은 일본 총리 자문기구인 ‘안보법제간담회’가 일본 영해에 진입한 외국 잠수함이 퇴거 요구에 응하지 않을 때 자위권을 행사할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보도한 바 있다.

현행 일본 자위대법은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는 경우를 “외부로부터 무력공격이 발생한 사태 또는 무력공격이 발생할 명백한 위험이 절박하게 있다고 인정되는 사태”에 한정시키고 있다(제76조①). 유엔 헌장 및 전통 국제법에서도 같은 입장인데 영해에 진입한 외국 잠수함이 연안국의 퇴거 요구에 불응하는 경우를 외부로부터 무력공격의 발생 또는 무력공격이 발생할 명백한 위험이 절박했다고 보긴 어렵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무력공격과 연계시키려는 태도는 일본 총리의 행보에 도를 넘는 측면이 있음을 보여주는 전형적 사례다.

유엔 해양법협약상 잠수함엔 부상해서 자국 국기를 게양, 계속적이고 신속한 통항을 할 것을 조건으로 외국 영해에서 무해통항권이 인정되고 있다(제18·20조). 잠수함이 외국 영해를 잠항(潛航)통항하거나 잠항 중인 잠수함이 부상명령에 불응하는 경우, 부상했으되 계속적이고 신속한 통항을 하지 않고 외국 영해를 배회(徘徊)하는 경우 연안국의 법령 위반이 되며 연안국은 퇴거를 요구할 수 있다(제30조). 요구에 불응할 때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에 대해서는 국제법상 명시적 규정이 없어 선례를 참고할 수밖에 없다.

1982년 10월 스웨덴 당국이 자국 극비 해군기지가 있는 무스케(Muske) 해역에 정체불명의 잠수함이 잠수 중임을 탐지했다. 수중음파탐지기 탐지 결과 잠수함의 존재를 확인한 스웨덴 군부는 대형 잠수함의 수중 통로 두 곳을 철망으로 차단한 다음, 폭뢰를 투하하고 어뢰를 발사하는 등 강제 부상에 총력을 기울였다. 처음 기포(氣泡)가 떠오르고 대형 기름띠가 형성되는 등 반응이 있기도 했으나 한 달간 계속된 수색에도 결과는 없었다. 스웨덴 당국은 소형 잠수함이 철망이 설치되지 않은 곳을 통해 탈출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물증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웨덴 매체들은 소련의 소행으로 단정했으며 국민들은 소련을 규탄하고 정부의 무능을 힐난했다. 뒤이어 나온 평가 보고서에는 군당국이 강제 부상에 주력한 나머지 격파하지 않은 데 대한 책임 추궁이 있었다.

우여곡절 끝에 스웨덴에서는 1983년 3월 3일 다음과 같은 내용의 법률이 제정됐다. 첫째, 스웨덴 내수(內水)에 잠수 중인 외국 잠수함은 이를 강제 부상시켜 식별 절차를 거친 다음 더욱 자세한 조사를 위해 정박지로 연행한다는 것. 이때 필요하면 사전 경고 없이 무기를 사용한다는 것. 둘째, 영해를 잠항하는 외국 잠수함은 영해 밖으로 축출한다는 것. 이때 필요하면 무기를 사용하되 특별한 사정이 있으면 최고 사령관의 결정에 따라 사전 경고 없이 무기를 사용할 수 있다는 것 등이다.

이 같은 스웨덴의 조치에 대해서는 소련을 포함한 국제사회 어느 나라도 이의제기를 하지 않았다. 이는 국제사회의 용인이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현 시점에서 불법침범 잠수함 또는 적법한 연안국 지시에 따르지 않는 외국 잠수함에 대한 대응은 내수인가 영해인가를 구별하되 연안국이 ‘단계적이고 상응하는 조치(graduated and proportional measures)’를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일본에서 거론 중인 대응방법에는 내수와 영해의 구별이 없고 자위권과 ‘단계적이고 상응하는 조치’의 구별이 없다. 국제법상 내수는 기선(基線)의 육지 쪽 수역을 의미하고 영해는 바다 쪽 수역을 뜻한다. 자위권은 무력공격이 있어야 발동되는 것이지만 단계적이고 상응하는 조치는 상대방의 태도 여하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이를 엄격히 구별하지 않으면 자칫 자위권 남용으로 연결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김찬규 대한국제법학회 명예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