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남형두] 하트 체임버를 위하여
입력 2014-02-18 01:36
지난 연말 세종문화회관에서는 매우 이색적인 연주회가 있었다. 하트 시각장애인 체임버 오케스트라 정기연주회다. 시각장애 음악인으로 구성된 국내 유일의 체임버 오케스트라인 하트는 2007년에 창단되어 벌써 10회째 정기연주회를 이어가고 있다. 브람스 탄생 180주년 기념 공연으로 연주시간이 거의 1시간 걸리는 4번 교향곡을 필두로 영화음악, 만화영화 주제곡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곡을 선보였다. 여느 연주회와 다른 것은 지휘자가 없다는 것과 악장이 끝날 때마다 클라리넷 연주자인 음악감독이 친절한 해설을 곁들였다는 것이다.
지휘자 없이 20여명의 단원이 그 긴 곡을 서로 엉기지 않고 연주한다는 것은 말 그대로 마음(하트)이 통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다. 게다가 악보를 볼 수 없으니 모조리 암보할 수밖에 없다. 모든 악보를 외워 2시간이 넘는 긴 연주를 하였으니 이들이 얼마나 연습을 했는지는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가장 감동적인 순간은 본 연주가 끝난 후였다. 관악 파트는 악기별로 한 사람밖에 없어서 교대로 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플루트 연주자는 피콜로까지 맡아서 1인2역을 하는 등 보통 오케스트라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힘든 연주였을 것이다. 연주가 끝나자 관객들은 자리를 뜰 줄 모르고 앙코르를 연발하였다.
그런데 갑자기 무대 한쪽부터 차례로 불이 꺼지더니 이내 공연장은 칠흑 같은 어둠으로 변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라 처음엔 정전인가 싶었는데, 정적을 깨뜨린 바이올린을 시작으로 ‘You raise me up’ 연주가 울려 퍼졌다. 2∼3분 될까 한 짧은 시간이었지만, 눈을 뜨고 있어도 소리만 들릴 뿐 아무것도 볼 수 없으니 곡이 끝나고 불이 들어올 때까지 조용히 눈을 감아 버렸다. 음악에 집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저들이 연주한 2시간 동안의 경험을 잠시라도 하기 위해서였다. 본 연주 때보다도 더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 어떤 연설이나 설교보다 큰 울림이 있었다.
휴식시간에 둘러보니 객석에는 부모와 함께 온 많은 어린 시각장애인들이 있었다. 음악을 전공하는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하트 체임버는 희망이자 탈출구인 것 같았다. 이상재 음악감독은 스무 명 남짓한 전업 단원들에게 하다못해 교통비라도 대주기 위해 공연 일정을 잡느라 분주하다. 지난 8년을 해오면서 얼마나 힘들었던지 대학교수인 그 자신만을 위해서라면 몇 번이고 때려치우고 싶었다고 한다. 그런데 이곳이 유일한 직장인 시각장애 단원들과 이곳을 희망으로 여기고 연습하는 어린 후배들을 생각하니 도저히 그럴 수 없었노라고 한다.
미국 카네기홀에까지 섰던 경험이 말해주듯 실력에 있어서도 결코 만만치 않은 이들이 연주에 전념하기에는 무엇보다 경제적 문제가 가장 큰 듯하다. 1년에 1억원씩 지원해주는 기업 5곳만 있어도 이들은 행복하게 음악활동을 할 수 있다. 그렇게만 된다면 암흑 속에서 절망하고 있는 어린 시각장애 학생들에게 삶의 희망을 줄 수 있다.
지난 크리스마스이브 때, 강남의 어느 교회 앞을 지나간 적이 있다. 길 건너편에서 어떤 사람이 휴대전화로 연신 형형색색으로 장식된 크리스마스트리를 촬영하고 있었다. 하트 체임버를 위해서 기업에 손을 벌릴 것도 없다. 교회들이 크리스마스 장식에 쓰는 돈의 일부만 모아줘도 하트 같은 장애인 악단 몇 개는 운영되고도 남을 것이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고 하신 예수의 말씀을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린다. 그리고 그날 그 어둠 속에서 지휘자 없이도 서로의 마음과 마음이 줄로 연결된 것처럼 하나가 되어 혼신을 다해 연주하던 하트 단원들이 눈에 아른거린다.
남형두(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