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돋을새김-정재호] 고충처리인의 ‘유쾌한’ 고충

입력 2014-02-18 01:36


달포 전, 70대 여성 어르신에게서 전화가 왔다. 다소 성급한 목소리로 ‘고충처리인’을 찾았다. 어르신은 국민일보의 보도로 인해 피해를 봤다고 주장했다. 어르신의 미담에 관한 기사였지만 이를 본 관공서가 귀찮게 굴었던 모양이다. 어르신은 지인을 통해 언론중재제도를 알게 됐고 언론중재위가 어르신에게 고충처리인을 안내해 줬다고 했다. 고충처리인과 대화가 통하지 않으면 언론중재위에 오라고 했다는 것이다. 정정보도와 손해배상을 함께 신청할 수 있다고 고지했음은 물론이다. 하지만 어르신은 언론중재위에 가지 않고 고충처리인과 원만히 처리했다.

이와는 반대로, 한 20대 여성은 기자에게 기사 삭제 요청을 했으나 거절당하자 고충처리인을 거치지 않고 언론중재위로 직행했다. 여동생이나 누나를 ‘성적 노리개’ 삼아 사진을 찍어 인터넷에 올리는 실태를 고발하는 기사에서 자신의 동의 없이 신체 부위 뒷모습 노출 사진을 실었다는 것이 이 여성의 주장이었다. 역시 정정보도와 함께 상당액의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하지만 언론중재위 측은 기사에 개인의 인적사항이 적시된 것도, 뒷모습의 일부 노출 사진만으로는 제3자가 누구인지 알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취지의 의견을 보였다. 결국 이 여성이 택한 건 신청 취하와 사진을 올린 것에 대한 후회의 눈물이었다. 온라인에서 스스로 보호하지 않는 초상권과 명예, 사생활은 법에서도 보호하지 않는다는 교훈을 준 사례로 평가된다.

독자와의 소통을 중히 여겨

70대 어르신과 20대 여성 사례의 경계선에 있는 지위가 고충처리인이다. 생소하게 들리는 독자도 있겠지만, 언론중재및피해구제법상 고충처리인은 법적 지위가 보장돼 있다. 그 권한과 직무는 사실이 아니거나 타인의 명예, 그 밖의 법익을 침해하는 언론보도에 대한 시정권고와 구제가 필요한 피해자의 고충에 대한 정정보도, 반론보도 또는 손해배상의 권고다. 언론사 소속이지만 피해자의 편에서 고충을 원만히 해결해야 하는 자리로, 필자는 겸직하고 있다.

국민일보는 지난해 10월 23일 온·오프라인을 망라한 언론사 가운데 처음으로 홈페이지 한 귀퉁이에 숨어 있던 고충처리인을 독자 곁으로 ‘커밍아웃’시켰다. 온라인 전송 기사 하단에 ‘뉴스미란다원칙’이란 문패를 달고 고충처리인의 전화번호와 이메일을 공개했다. 독자 입장에선 기사를 접하는 즉시 고충처리인과 연결되는 통로가 생긴 것이다. 처음엔 사내에서조차 선후배와 동료들이 ‘걱정스러운 격려’를 보냈다.

뉴스미란다원칙 효과 톡톡

그 후 4개월여가 흐른 지금까지 업무가 일시 방해될 정도로 전화통이 불 난 적도 여러 번 있었다. 일부 팬덤(열성팬)들과 좌우 양극단 사이트 회원들은 말이 잘 통하지 않기도 했다. 고충처리인 전화번호를 기사 내용에 적시된 사람이나 기관·기업의 그것인 양 착각하고 괴롭히는(?) 전화도 하루에 몇 통씩 접한다.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뉴스미란다원칙’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 무엇보다 70대 어르신의 사례처럼, 일주일이 멀다 하고 언론중재위를 찾았던 일이 눈에 띄게 줄었다. 독자들에 대한 ‘친절한 응대’가 분쟁의 소지를 미연에 방지하는 최선이라는 걸 깨달았다. 덤으로 기사 제보도 줄 잇고 있다.

온라인 독자들은 스마트했다. 20대 여성이 언론중재위에 제출한 조정신청서를 보면 법률지식이 아마추어 수준을 넘는다. 70대 어르신도 인터넷에서 피해 구제 방법과 절차를 손쉽게 알 수 있다. 이런 온라인 독자들의 접근을 제한하거나 가벼이 여기는 건 더 큰 화(언론 중재나 조정 신청, 소송 등)를 부를 수 있다. 언론이 이들 독자의 눈높이에 맞추는 노력을 소홀히 해선 안 되는 이유다.

정재호 디지털뉴스센터장 j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