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미술관 문닫는 그 시간 오후 6∼8시 딱 2시간의 재미… 아트선재센터 기획전 ‘6-8’
입력 2014-02-18 01:35
전시 제목이 ‘6-8’이다. 무슨 의미일까. 오후 6시부터 8시까지 2시간 동안만 관람객을 맞이하는 전시라는 뜻이다. 서울 종로구 율곡로 아트선재센터의 올해 첫 기획전 ‘6-8’은 일반적으로 미술관이 문을 닫는 시간에 관람할 수 있는 이색 전시다. 출품작들도 지정된 전시 공간을 벗어났다. 건물 옥상과 기계실을 비롯해 미술관 입구와 한옥, 정원, 계단 등 곳곳에 작품들을 배치했다.
관람 동선이 정해져 있지 않기 때문에 관람객이 원하는 대로 돌아다니며 다양하게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아트선재센터는 처음에는 한옥을 개조해 개관했다가 전시 공간 확충과 관람편의를 위해 1998년 현대식 미술관을 새로 지었다.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의 부인 정희자씨가 가꾼 한옥과 정원을 이번 전시를 통해 일반에 개방한다는 점에서 화제가 되고 있다.
전시에는 로와정(노윤희+정현석), 리경, 염중호, 프로젝트그룹 이악, 이원우 등이 참여했다. 로와정의 작품은 밤 조명을 따라 미술관을 한 바퀴 돌아보면서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정원에 실제로 심은 나무의 그림자와 종이 나무의 그림자가 섞인 작품은 어떤 것이 진짜인지 헷갈리게 한다. 벽을 따라 놓인 집 모양의 조명에는 쪽방 할머니가 혼자 TV를 보는 모습 등을 그려 넣었다.
리경은 정원에 있는 한옥에 빛과 어둠, 사운드를 넣어 관람객과 공간이 일체가 되는 느낌을 선사한다. 염중호의 작품은 미술관 앞 식당의 환풍구와 내부 기계실 등에 놓여 있다. 허리를 굽히고 지나가야 하는 기계실에 있는 작품에는 ‘빨리빨리’, 설마 저런 곳에 작품이 있을까 싶은 곳에 있는 작품에는 ‘헉’이라는 글씨를 새겨 넣었다.
옥상에는 이원우의 온실 ‘세상에서 사라져 버리고 싶다. 아니면 그 반대이거나’가 설치됐다. 온실 안에서는 하얀 연기가 뿜어져 나온다. 안으로 들어가면 갑자기 세상이 사라지고 혼자 남은 듯한 경험을 하게 된다. 온실 안으로 들어간 관람객이 일순간 연기 속으로 사라지는 듯 보인다. 작가는 “연기처럼 사라질 수는 없지만 연기 속으로 사라질 수 있는 작품”이라고 설명했다.
밴드 ‘삐삐롱스타킹’의 멤버였던 권병준과 김근채(이악)의 ‘서울 비추기’도 옥상에 설치됐다. 헤드폰이 연결된 손전등을 들고 이리저리 비추면 불빛 방향에서 들려오는 다양한 소리를 감상할 수 있다. 권병준은 “소리를 들려주는 등대”라고 했다. 작품 설명이 담긴 지도 한 장을 들고 이곳저곳 작품을 찾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하다. 옥상에서 바라보는 주변 야경도 볼거리다(02-739-7068).
이광형 선임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