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이홍렬 (2) 평생의 확신 “우리집은 예수 영접하고 복터진 집안”
입력 2014-02-18 01:34
자식을 잃은 슬픔에 눈물로 세월을 보내시던 어머니께서 어느 날 새벽에 꿈을 꾸셨다.
생전 어머니 말씀에 따르면 꿈속에서 어머니는 오른쪽에 시퍼런 강물이 흐르는 낭떠러지 길을 따라 가고 계셨다. 길 가운데에는 성황당 같은 집이 있었다. 갑자기 어디서 나타났는지 흰 도포자락에 하얀 수염을 흩날리는 멋진 도사 한분이 어머니에게 다가왔다. 그리고는 성냥을 주면서 그 성황당에 불을 지르라고 했다.
어머니가 무서워서 못 하겠다고 했더니 그 도사가 대신 불을 붙였다. 이윽고 잿더미로 변한 그 집의 흔적까지 낭떠러지 밑으로 쓸어버리라고 도사는 말했다. 어머니는 “그 말을 따랐더니 그 길이 그렇게 깨끗할 수 없었고 마음까지 아주 시원했다”고 말씀하셨다.
어머니가 깊은 잠에서 깨셨을 때 교회의 새벽 종소리가 멀리서 ‘뎅그렁 뎅그렁’ 들려왔다. 평소에도 울렸건만 귀에 잘 들어오지 않던 그 교회 종소리가 그날 새벽에는 어머니를 향해 ‘어서 오라. 어서 내게 오라’는 간절한 외침으로 들려왔다고 하셨다. 그렇게 해서 어머니는 처음으로 교회에 나오셨다. 정확히 확인해보지는 못했지만 지금의 주천감리교회가 아닌가 생각된다. 어머니는 이런 말씀을 하시기도 했다. “그날 밤 꿈속에 나타난 도사는 하나님이셨을 거야. 불에 타버린 성황당 건물은 아마도 내가 섬기던 모든 우상과 가슴 아픈 과거의 일들이 아닐까.”
예수님의 복음은 우리 집안에 이렇게 찾아오셨다. 어머니는 권사 직분으로 교회를 섬기셨고 형님은 장로님이셨다. 어머니의 자녀 중 목사가 두 사람이나 나왔다. 딸, 며느리, 사위들도 모두 직분을 갖고 교회를 다니고 있다. 손자 손녀들까지 집사가 되어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
필자는 가족이 모이면 늘 이런 말을 한다. “우리 집안은 예수님 영접하고 복이 터졌다”고. 그렇다. 예수님께서 우리 집안에 계시니 집안이 평안하고 화목하다. 지금까지 가족 간에 큰소리 한번 나온 적 없다. 가족들이 서로 화목하고 아끼며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모두 예수님 덕분이다. 가난했지만 예수님 덕분에 화목했고 험한 세월을 살아왔지만 예수님 덕분에 모든 형제가 한마음으로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었다. 참 고마우신 우리 하나님이다.
주천면에서 교회 사람들의 따뜻한 관심과 배려로 부모님은 많은 위로와 용기를 얻었지만 일찍 아들을 떠나보낸 슬픔과 고통을 쉽게 이겨내지 못하셨다. 이런 이유로 자식을 강물에 묻은 주천면을 떠나 조상들이 대대로 살던 고향땅으로 돌아가기로 하셨다. 필자가 세 살 때였다. 그래서 정착한 곳이 당시의 충북 중원군 살미면 세성동이다. 별을 씻는다는 의미를 가진, 참으로 아름다운 마을이었다.
우리 가족의 살림살이는 피폐해져 있었다. 1950년대 후반 우리나라 농촌에서 밥술을 제대로 뜨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았으리라. 자식 잃은 슬픔에서 벗어나지 못하셨던 아버지는 가족을 돌볼 여력도 없어 보이셨다.
떡국도 얻어먹던 시절이었다. 비교적 잘산다는 양조장집에서 설날에 떡국을 끓여 동네에 한 그릇씩 돌리면, 그 1년에 한 번 먹게 되는 떡국이 어찌나 맛있던지. 산나물, 밀가루 쑥떡, 고구마, 송홧가루, 보리죽 같은 것으로 근근이 풀칠을 하며 살았다.
그 지긋지긋한 가난의 고통 속에서도 시간은 흘러갔다. 조금씩 돈을 모아 세성동 주막거리에 어머니께서 구멍가게를 여셨다. 당연히 소주도 진열하고 팔았다. 다섯 살 때 나는 손님이 남겨둔 소주를 마시다가 들통나 호되게 회초리를 맞곤 했다.
정리=김경택 기자 pty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