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정부, ‘한국판 동물복지 체계’ 구축 불필요한 ‘죽음의 고통’ 줄이기… 살처분 원칙 그대로
입력 2014-02-17 02:31
정부는 최초로 마련하는 동물복지 5개년 계획에 살처분 대상 동물의 불필요한 고통을 줄여주기 위한 방안을 포함시키기로 했다. 이는 조류인플루엔자(AI) 및 구제역 사태 때마다 반복되는 생매장 논란을 최소화하는 한편, 살처분 인력의 건강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정부는 이번 5개년 계획을 통해 농장·반려·실험동물을 망라한 ‘한국판 동물복지 체계’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살처분 고통은 인정, 살처분 예외는 불인정=한 달째 이어지고 있는 고병원성 AI 사태에서 살처분 논란의 핵심은 2가지다. 감염 농장에서 3㎞ 이내에 위치하고 있다는 이유만으로 정부가 승인해준 동물복지 농장의 건강한 닭을 무차별적으로 살처분하는 데 대한 반발과 살처분 과정에서 생매장이 자행되면서 동물이 불필요한 고통을 받고 있다는 것이다.
정부는 우선 살처분 과정에서 생매장 금지 등 동물복지를 강화해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회원으로 가입한 국제수역사무국(OIE)의 살처분 규정에도 불필요한 고통 경감 등 동물복지 지침이 포함돼 있다. 또 살처분에 동원된 공무원들이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를 호소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역시 고통받으면서 죽는 동물을 보면서 생기는 것이다. 정부 관계자는 16일 “국제화된 동물복지 규정을 준수하고 살처분 인력에도 도움이 되는 일석이조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살처분 예외는 인정하지 않을 방침이다. 방역 당국 관계자는 “동물복지 농장 닭들이 아무리 건강해도 AI 바이러스를 이길 수는 없다”며 “건강한 만큼 바이러스 잠복기가 길어지면서 오히려 전파력이 더 뛰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동물복지 직불제 도입…열악한 농장동물 환경 개선=AI와 구제역이 발생할 때마다 정부는 원인을 철새 등 외부 유입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환경 및 동물보호단체들은 열악한 사육환경 때문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A4용지 반 장만한 공간에서 사육당하는 닭 등 공장식 사육으로 면역력이 약해지면서 바이러스가 급속도로 확산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정부는 이를 개선키 위해 2012년부터 동물복지축산농장 인증제를 도입하는 등 동물복지형 축산을 장려하고 있지만 활성화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동물복지 인증농장은 현재 산란계만 46개소가 있고 돼지는 전무한 실정이다.
정부는 동물복지농장이 면역력 강화, 환경오염 감소 등 공공재적 성격이 존재한다는 판단 아래 내년부터 동물복지축산농장 직불제를 도입하기로 했다. 농장주의 초기 비용부담을 정부가 직불제를 통해 보전해주겠다는 것이다. 장기적으로는 현재 사육단계만 적용되는 동물복지 인증제를 ‘사육-운송-도축’ 등 모든 단계로 확대해 구체적인 동물복지 기준을 정하는 동물복지 축산물 인증제로 발전시켜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동물인수제 도입=반려동물 대중화에 따른 여러 사회적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도 마련됐다. 정부는 사육자가 포기한 동물을 인수해 입양을 주선하는 동물인수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지난해 기준으로 전국적으로 사육되는 반려동물은 개 131만 마리, 고양이 33만 마리로 추산된다. 그러나 지난해 9만8704마리 등 매년 10만 마리 정도의 반려동물이 버려지고 있다. 정부는 이를 줄이기 위해 키울 능력이 안 되는 반려동물 주인으로부터 정부가 일정 비용을 받고 이를 인수키로 했다. 또 접근성이 좋은 도심지에 동물입양센터를 설치·운영해 버려진 동물을 입양해 키우는 문화를 확산시킬 계획도 세웠다.
또 현재 개로 국한된 동물등록 대상이 고양이로 확대되고 인식표 부착방법도 동물의 몸속에 마이크로 칩을 주입하는 내장형으로 일원화하기로 했다. 고양이를 등록대상에 포함하면 길고양이와 기르던 고양이의 구분이 쉬워져 길고양이의 번식을 막기 위한 중성화 사업에 탄력을 받을 수 있다는 게 농식품부의 입장이다. 최근 길고양이 먹이주기를 둘러싼 지역주민 사이의 분쟁이 끊이지 않는 것도 등록 대상 확대의 원인이 됐다.
세종=이성규 선정수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