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객 1억명 ‘한국영화’, 세계 3대 영화제 경쟁부문 진출 실패… 명장 ‘대’ 이을 신인 감독이 안 보인다

입력 2014-02-17 01:33

영화계 안팎에서 한국영화의 미래를 이끌어갈 신인감독의 부재를 걱정하는 목소리가 잇따르고 있다. 새로운 영화 세계를 보여주는 감독들이 2000년대 들어서 거의 배출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영화는 지난 15일(현지시간) 폐막한 제64회 베를린영화제에서 총 20개 작품이 경합을 펼친 경쟁 부문에 단 한 편도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정윤석 감독의 ‘논픽션 다이어리’, 박경근 감독의 ‘철의 꿈’이 아시아 영화만을 대상으로 수여하는 넷팩(NETPAC)상을 받으며 체면치레를 했을 뿐이다.

문제는 지난해 한국영화가 베를린영화제와 함께 세계 3대 영화제로 통하는 칸영화제, 베니스영화제에서도 경쟁 부문 진출에 실패했다는 점이다. 한국영화가 2012년에 이어 지난해에도 국내에서 1억 관객을 동원하는 성과를 올린 점에 비춰보면 해외에서의 이러한 성적표는 초라하게 느껴진다.

한국영화는 2002년 임권택 감독이 ‘취화선’으로 칸영화제 감독상을 수상한 이후 유럽에서 열리는 주요 영화제에서 좋은 성적을 거둬왔다. 박찬욱 감독은 2004년과 2009년 칸영화제에서 각각 ‘올드보이’와 ‘박쥐’로 심사위원대상(2등상)과 심사위원상(3등상)을 받았다. 2012년 베니스영화제에선 김기덕 감독이 ‘피에타’로 최고상인 황금사자상의 영예를 안아 큰 화제가 됐다.

그렇다면 한국영화가 최근 들어 이들 영화제에서 수상은 물론이고 ‘본선’ 진출에도 실패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영화계 안팎에선 독창적 예술 세계를 보여주는 명장의 대(代)가 끊긴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창동 박찬욱 김기덕 홍상수 등 현재 세계적 영화제에서 각광받는 한국 감독 대다수는 1990년대에 데뷔한 인물이다. 이들 감독의 신작이 안 나오면 해외 영화제 수상의 명맥도 끊어지는 현상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최근 신인감독 중 해외 주요 영화제에서 큰 성과를 올린 인물은 지난해 칸영화제 단편 부문에서 ‘세이프’로 황금종려상을 받은 문병곤 감독이 거의 유일하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신인감독은 꾸준히 나오지만 이들의 영화를 보면 기존 영화의 문법만 답습한, 개성이 없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학이나 아카데미 등에서) 획일적인 교육을 받은 뒤 영화를 만들다보니 통통 튀는 재능을 보여주는 이들이 사라지고 있는 분위기”라며 “신인감독 상당수가 (내용보다는) 영화의 기술적인 부분에만 신경 쓰고 있다”고 덧붙였다.

예술성 강한 작품을 선보이는 감독이 배출되지 않고 있는 데는 영화 산업의 상업화 때문이기도 하다. CJ E&M이나 롯데엔터테인먼트 등 대기업이 대부분 영화의 투자·제작·배급을 맡으면서 상업적 성공을 거둘 수 있는 작품에만 돈이 몰린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역량 있는 신인감독의 ‘무모한’ 도전을 격려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않고 있는 셈이다.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