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공급선·화물선 충돌] “기름 구멍 막아라” 로프에 매달려 2시간 사투

입력 2014-02-17 02:31

남해해경청 특수구조단 소속 신승용(42)·이순형(36) 경사는 15일 선박 충돌로 기름이 유출되고 있다는 신고를 받고 헬기에 올라탔다. 사고 해역인 부산 영도구 생도 남서쪽 4.5㎞ 남외항 묘박지에 도착한 것은 오후 4시쯤. 초속 6∼8m의 강풍에 2∼3m의 높은 너울성 파도가 일어 접근조차 힘든 상황이었다.

파손된 라이베리아 국적 8만8000t급 화물선 캡틴 반젤리스 L호의 구멍에서는 검고 끈적끈적한 벙커C유가 솟구쳐 올랐고 인화성 강한 유증기도 쉴 새 없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화물선이 460t급 유류공급선 그린플러스호와 충돌해 일어난 사고였다.

사고 직후 유류공급선이 밸브를 잠그고, 화물선도 수평탱크를 이용해 선체를 구멍이 난 반대쪽으로 기울이는 조처를 했지만 화물선에 적재된 벙커C유 1400t 가운데 상당량이 이미 해상으로 유출된 상태였다.

두 사람에게 특수 임무가 맡겨졌다. 헬기에서 내린 두 사람은 밧줄을 붙잡고 구멍이 난 곳을 살피기 위해 내려갔다. 화물선 왼편 연료탱크 부위에 가로 20㎝, 세로 30㎝ 크기의 구멍이 나 있었다.

높은 파도로 인해 화물선이 휘청거려 중심조차 잡기 어려웠다. 벙커C유는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다. 구멍을 막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신 경사와 이 경사는 벙커C유를 뒤집어쓴 채 구멍을 막기 위해 사투를 벌이기 시작했다.

두 사람은 로프 하나에 의지해 화물선 왼쪽 외부에 매달린 채 원뿔 모양의 나무 쐐기와 부직포 형태의 기름 흡착제로 선박 파공 부위를 막기 위해 필사의 작업을 벌였다. 사투를 벌인 지 2시간. 마침내 오후 6시19분 벙커C유가 나오던 구멍을 완전히 틀어막았다. 두 사람은 밧줄에 매달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기름이 콸콸 쏟아져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아 두려웠지만 구멍을 막아야겠다는 생각밖에는 없었습니다. 2시간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습니다.” 긴급방제에 나선 해경은 이틀째 경비정과 해군, 소방대, 민간선박 등 모두 98척의 선박과 헬기 4대 등을 동원해 기름띠가 확산되는 것을 막고 있다.

부산항만청과 해경은 화물선과 유류공급선의 사고 전 기름 적재량과 실제 급유량, 사고 후 잔량 등을 조사한 결과 바다에 유출된 기름이 벙커C유 237㎘ 정도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이번에 유출된 양은 최근 여수에서 발생한 기름 유출사고 때의 164㎘보다 훨씬 많다.

해경은 사고지점과 미역·전복양식장이 있는 부산 영도 연안이 6㎞ 정도 떨어져 있고 기름띠가 확산되는 것을 막기 위해 오일펜스를 설치하는 등 조치를 취하고 있어 연안이나 양식장 오염 등 기름 유출에 따른 2차 피해가 날 가능성은 크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유출된 벙커C유가 휘발성이 높지 않고 바다에 유출되면 표층 1m 아래 정도에 분포하는 것으로 알려져 방제작업에서 어느 정도 기름이 회수될지는 미지수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해경은 방제작업이 마무리되는 대로 유류공급선과 화물선 선원 등을 상대로 급유작업 때 과실이 있었는지 등 사고 경위와 유출된 기름의 양 등을 수사할 예정이다.

부산=윤봉학 기자 bhyo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