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사회를 위하여-학교 떠난 아이들을 품자] (7)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 싶은 아이들

입력 2014-02-17 01:38


“요즘 교복 입고 다니는 학생들이 가장 부러워요”

“자퇴는 절대 ‘비추(추천하지 않는다는 뜻)’예요.”

자퇴생 재범이(이하 가명·18)가 요즘 가장 부러운 건 교복 입고 다니는 또래들이다. 고등학교 2학년이던 지난해 6월까지 5년 가까이 지겹도록 입었던 교복이지만, 왼쪽 가슴에 학교 마크가 수놓인 교복을 볼 때마다 자신도 모르게 눈길이 갔다. “아직도 가끔은 교복을 입고 학교에 가는 꿈을 꾼다”는 재범이는 “학교를 나온 지 일주일 만에 자퇴를 후회했다”고 말한다.

◇“교복만 봐도 학교 돌아가고 싶어요”=자율형사립고 전교 꼴찌였던 재범이가 자퇴를 결심하게 된 데는 평소 자주 찾던 인터넷 포털사이트 ‘자퇴 카페’의 영향이 컸다. 재범이는 공부는 못하지만 학교폭력도, 교사와의 갈등도 없는 평범한 학생이었다. 막연히 ‘학교 다니기 싫다’라고 생각하던 차에 자퇴 카페에 올라온 글들을 읽다보니 점차 학교를 그만둬야겠다는 생각이 커졌다.

“자퇴 카페에 올라오는 글들 중 70∼80%는 ‘자퇴를 결심했다’ ‘자퇴하니 너무 좋다’ 같은 글이에요. ‘자퇴하면 후회하니 다시 한 번 생각하라’라는 글도 분명히 있었는데 당시에는 그런 얘기들이 눈에 하나도 안 들어왔어요. ‘난 공부도 못하고 열등생이니까 학교는 다녀서 뭐해’ 그런 생각만 가득했어요. 그러다가 충동적으로 자퇴를 결심한 셈이죠.”

학교와 집에서 나와 서울 신림역 부근에서 생활하고 있는 ‘가출팸(가출 패밀리)’의 일원 서연(17·여)이도 자퇴를 후회한다. 염색머리와 짧은 교복 치마 때문에 문제아로 ‘찍혀’ 학교생활이 고달팠지만, 다시 학교로 돌아가고 싶은 게 서연이의 진짜 속내다.

“학교에 무슨 말썽만 일어나면 선생님들이 다 저만 지목했어요. 선생님도 미운 데다 짜증나서 자퇴를 결심했죠. 하지만 지금 당장 고등학교 졸업장부터가 걱정이에요. 검정고시도 그렇고. 제 미래가 너무 암담해요.”

◇“돌아가면 또 나올 것 같아요”=학교폭력, 교사와의 갈등, 성적문제, 가정에서의 불화 등 아이들이 자퇴를 하는 결심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그러나 ‘자의로’ 자퇴 원서를 쓰고 스스로 교문을 나섰음에도 불구하고, 대다수 아이들은 자퇴를 후회했다. 국민일보가 만난 학교이탈학생 40명 중 30명 이상은 “‘나중에 후회하니 조금만 참아라’는 선생님 말을 들을 걸 그랬다”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자퇴생들이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 가장 먼저 마주치는 것은 사회의 편견이다. 막상 자퇴를 하고 학교 밖으로 나왔지만, 고교 졸업장도 없는 자퇴생들을 맞아주는 곳이 흔할 리 없다.

신림역 가출팸의 리더인 지훈이(17)도 얼마 전 자퇴생의 장벽을 다시 한 번 실감했다. 바리스타가 꿈인 지훈이는 어깨 너머로라도 커피 내리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여러 곳의 커피전문점에 지원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언제나 “자퇴생이라 안 된다”였다.

결국 지훈이는 장물 휴대폰을 파는 ‘폰팔이 형들’ 밑에서 심부름을 하며 지내고 있다. 불법이란 걸 알면서도 돈이 궁하기에 어쩔 수 없다. 그는 “어느 곳에도 소속돼 있지 않은 자퇴생들이 할 수 있는 일은 갈빗집 불판 나르기나 동네식당 서빙이 전부”라며 “학교에 다니는 친구들에 비해 시간은 많지만 우리 같은 애들을 기꺼이 받아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자퇴를 후회하면서도 막상 학교 복귀를 하자니 두렵다고 한다. “학교에 돌아가도 다시 또 나올 것 같다.” “지금 돌아가면 유급생인데 후배들과 같이 다니기 싫다.” “나를 받아줄 학교가 있을지 모르겠다.” 아이들이 보인 반응이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생존 준비하는 아이들=결국 자퇴생들이 선택하는 방법은 ‘각개전투’다. 중·고졸 검정고시를 독학하거나, EBS 강의를 들으며 홀로 대입 수능을 준비하는 방식이다. 끌어주는 이가 없으니 마음만 바쁘고 우왕좌왕이다.

자퇴 전 동급생이던 친구가 한국사능력시험 자격증을 땄다는 소리를 듣고 자신도 한국사 시험을 준비하기 시작했다는 재범이는 “학교에 다니는 친구가 한국사를 공부한다고 하니 나도 모르게 불안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학교 밖에 있으니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어떤 걸 먼저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토로했다.

아이들이 학교를 떠났더라도 이들을 돕는 시스템이나 대안교육이 필요한 까닭이다. 떠난 아이들을 위한 지원은 막 걸음마를 뗐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해 11월 자퇴생들에게 격려서한을 보낸 데 이어 12월에는 학업중단 이후 이용할 수 있는 상담복지센터와 학업을 계속할 수 있는 대안교육기관을 안내하는 책자를 만들어 제공했다.

서울시교육청 학교 밖 청소년팀 김원식 사무관은 “자퇴가 학업의 ‘끝’이 되지 않도록 학력 및 복지 관리에 대한 공교육의 개입이 절실하다”며 “자퇴생들이 관내에 몇 명이나 있는지, 근황은 어떤지 추적하고 통계적으로 분석하는 작업뿐만 아니라 검정고시를 위해 학업계획을 세우는 일까지 도와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특별취재팀=이영미 정승훈 차장, 이도경 김수현 정부경 황인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