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이다.
스무 살 시절 물덤벙술덤벙하느라 어머니 속을 무던히도 썩였다. 사춘기도 아닌 20대의 질풍노도에 무슨 철학이 있었느냐 하면 전혀 아니다. 계산속 없는 단순한 성정이라서 여기저기 그저 떠다 박혔을 따름이다. 어머니는 자탄하였다. “너와 똑같은 딸 낳아서 겪어보라는 우리 어머니 말씀이 사무치는구나. 수업료를 톡톡히 내고야 옛날 우리 어머니 마음을 아는구나!” 어머니는 자식이 부리는 말썽을 학비삼아 당신 어머니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어머니가 낸 수업료에 맏딸은 뒤늦게 미안하다. 내 인생의 수업료도 떠올려본다. 세상에 공것은 없는 데다 꼭 맛을 봐야 맛을 아는 둔재라서 매사 수업료가 들어갔으니 어쩌랴. 그러면서 세월이 흐르고 흘러 해마다 이맘때, 이 글을 쓰는 하필 이날이면 생각한다. 새해 첫날이 아니고 설날도 아닌 오늘,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지지난해의 나보다 지난해의 내가 더 나은 사람이었는지, 지난해보다 지금 더 나은 사람이 됐는지 마음거울에 비춰본다.
더 나은 사람이란 전보다 너그러워졌음을 뜻한다. 세상만물에 도움이 된 삶이었나를 뜻하며, 식구에게 잘하였는지도 기준의 관건이다. 남에게보다 내 식구에게 다정하게 잘하기가 훨씬 어려운 까닭이다. 됨됨이가 진일보한 것 같기도 하고 퇴보한 것 같기도 하여 헷갈린다. 그곳에 도달하기 위해 노력할 뿐 판정은 의미 없는지도 모른다. 게다가 인생학교의 비싼 수업료에 비해 학업은 부진하여 어제보다 새털 깃만큼이라도 나은 사람이 되었다면 다행인 게다.
그런 점검 후 풍지고 재미있는 세상을 살 수 있게 해준 어머니에게 전화로나마 인사를 올린다. “엄마, 저를 낳아주셔서 고맙고 살아계셔서 고마워요.” “나도 네가 세상에 있어줘서 고맙다. 네가 언제 갈지 몰라도 세상 다 사는 날까지 건강하고 좋은 글 많이 쓰기 바란다.” “엄마도 저를 천애고아로 만들면 안 됩니다 오래 건강하게 살아주세요.” 각자 수업한 세월이 긴 덕분인가. 함께 늙어가는 모녀는 이제 정답다.
내년 오늘에 지금보다는 나은 사람이 되어 있어야 한다. 갑자기 성녀나 도인, 혹은 큰부처가 된다면 친한 이들이 너무 놀랄 테니 우등상은 받지 않도록 조심하자. 그리하여 어머니도 이 맏딸도 또 누구라도 인생학교에 두고두고 수업료를 내며 오래도록 공부하고 아주 조금조금 깨우쳐가는 건강한 낙제생으로 남도록 하자.
우선덕(소설가)
[살며 사랑하며-우선덕] 오래도록 수업료를
입력 2014-02-17 01:38 수정 2014-02-17 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