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2월 16일] 행함이 있는 믿음이어야 합니다

입력 2014-02-15 01:35

찬송 :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289장(통 208장)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야고보서 2장 14∼26절


말씀 : “많은 사람이 교회에 나오게 되는 것은 신앙 이론에 설복되어서가 아니라 기독교인의 사랑을 보았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교회를 떠나게 되는 것은 성경 내용을 믿을 수 없어서가 아니라 교인들의 불친절과 그들 가운데 있는 추잡한 일들을 보았기 때문이다.”

영국의 성서학자 윌리엄 바클레이의 말입니다. 성숙하지 못한 신앙은 빈 수레와 같습니다. 소리만 요란할 뿐 정작 있어야 할 신앙의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반면 성숙한 신앙은 소리보다 그 열매로 말을 합니다.

오늘 말씀은 믿음의 모양은 있지만 내용을 갖지 못한 믿음은 죽은 믿음이며, 그런 믿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14절)는 것입니다. 물론 구원은 행위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만 받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고보 선생은 행함 없는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말은 우리가 믿음이 아닌 행위로, 혹은 믿음에 다른 특별한 행위를 추가해야 구원받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니라 행함이 따르지 않는 믿음이란 절대로 있을 수 없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앞에 바로 선 믿음은 그 믿음과 어울리는 행위의 열매를 지니고 있습니다. 생명 있는 나무가 잎을 피우고 꽃을 피움으로 생명을 드러내는 것처럼 살아 있는 믿음 역시 그 행위와 삶의 열매로 자신의 생명 있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귀신들의 믿음과 조금도 다를 바 없습니다(19절). 사실 우리는 지금까지 ‘나는 하나님을 믿는다’는 말로 자신이 신앙인임을 증명하려 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귀신도 그런 정도의 믿음은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의 존재 앞에서 두려워 떤다고 했습니다.

실제로 거라사 지방의 군대 귀신은 주님이 그 앞에 나타나시자 두려워 달려와 절하며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여 나와 당신이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말했습니다. 그렇지만 귀신들은 주님이 그런 분이심을 알지만 그분을 예배하거나 그분께 자신을 드리지는 않습니다.

신앙은 전인격을 요구합니다. 그것은 지식이나 감정만이 아니고 의지적인 결단까지 요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혹시 자신의 믿음도 그 정도의 지식적이고 감정적인 수준에 머물고 있는 건 아닌지 늘 점검해야 합니다.

믿음은 아는 지식만으로, 감정적인 차원으로 멈춰선 안 됩니다. 믿음은 헌신과 믿는 것을 실천하는 결단으로까지 나가야 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허상일 뿐입니다. 아브라함은 순종으로 자신의 믿음 있음을 드러냈습니다. 아브라함은 분명히 믿음으로 의롭다 여기심을 받은 사람이지만(창15:6) 진정한 순종을 통해 그 믿음의 온전한 것이 입증되어야 했습니다.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22:12) 우리의 믿음은 반드시 삶을 통해 검증되고 입증되어야 합니다. 믿음을 실천하며 삽시다.

기도 : 지식이나 감정에 머무는 믿음이 아니라 삶에서 입증되는 믿음으로 살게 하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김성원 목사(광주중흥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