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로열패밀리] ‘넘버1’ 변덕에 운명 엇갈려… 김씨왕조 궁중여인 잔혹사

입력 2014-02-15 03:26


장성택 처형으로 드러난 북한의 모습은 최고지도자의 말이 곧 법이 되는 전형적인 봉건왕조다. 이런 김씨 왕조에서 로열패밀리 여성들은 어떤 삶을 살까. 화려한 생활을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정반대다. 굴곡진 삶을 살다 고독하게 생을 마감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김일성 시대, 김정숙과 김성애=김일성 주석의 첫 번째 부인은 김정숙이다. 김정일 국방위원장과 김경희 노동당 비서를 낳은 김정숙은 김 주석에게 배우자이자 혁명동지였다. 1937년 조선공산주의청년동맹에 가입한 김정숙은 김 주석이 작전사령관으로서 병력을 지휘하던 동북항일혁명군에 들어갔다. 특히 북한은 그 해 보천보 전투에서 김 주석과 함께 병력을 이끌고 일본군을 무찔렀다고 대대적으로 소개하고 있다. 혁명 동지에서 연인으로 발전해 1940년 김 주석과 결혼한 김정숙은 1945년 해방 이후 남편을 따라 북한에 들어왔다. 하지만 자녀가 장성하는 것을 보지 못한 채 1949년 32세라는 짧은 나이에 요절했다. 아들 김 위원장은 어머니를 장군으로 높여 부르며 우상화에 열을 올렸다. 북한에선 그녀를 ‘백두여장군’으로 부른다.

김 주석은 1949년 김정숙과 사별한 뒤 한국전쟁 중에 자신의 비서였던 김성애와 재혼했다. 이들의 결혼은 수년간 비밀에 부쳐졌다가 1958년 가족사진을 공개하는 형식으로 공식화됐다. 김성애는 남편 김 주석이 살아 있을 때는 조선민주여성동맹(여맹) 위원장을 맡는 등 위세가 대단했다. 하지만 자신을 어머니로 인정하지 않는 김 위원장이 집권하면서 ‘곁가지’(백두혈통 방계세력)로 몰려 현재는 아무도 소식을 알 수 없는 상태다. 김 주석과의 사이에 딸 김경진과 아들 김평일 김영일 등 2남1녀를 뒀다.

◇화려한 여성편력 자랑한 김정일=김 위원장의 부인은 모두 4명이다. 첫 번째 여인은 장남 김정남을 낳은 성혜림이다. 그는 영화배우 출신으로 김 위원장을 만났을 때 이미 결혼한 몸이었다. 김 위원장은 5살 연상의 성혜림을 이혼시킨 뒤 동거생활에 들어갔다. 절대 권력자에게 부인을 뺏긴 성혜림의 남편 이평은 대동강에 몸을 던져 자살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그 사랑도 급격히 식어버렸고, 성혜림은 2002년 모스크바의 한 병원에서 지켜보는 가족도 없이 쓸쓸히 눈을 감았다.

김 위원장의 두 번째 부인은 김영숙이다. 그의 네 여인 중 유일하게 김 주석의 정식 허락을 받아 결혼식까지 한 공식 부인이다. 하지만 아들 없이 설송, 춘송 등 2녀만 낳아 김 위원장의 관심에서 멀어졌다. 시아버지인 김 주석 집무실 타자수 출신이었다는 것을 빼고는 생사조차 베일에 가려져 있는 여인이다.

김 위원장의 세 번째 부인은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어머니인 고영희다. 오사카 출신의 재일교포라는 특징이 있다. 고영희는 김 위원장이 네 명의 부인 중 가장 사랑한 여인으로 알려져 있다. 김 위원장의 총애를 받았지만 고영희는 끊임없이 병마에 시달렸다. 결국 2004년 유선암 치료차 떠난 파리에서 수술 도중 불귀의 객이 됐다. 재일교포라는 한계를 가진 고영희는 아들 김 제1비서가 최고집권자가 된 후 2012년 ‘위대한 선군조선의 어머님’이라는 칭호를 받으며 화려하게 부활했다.

김 위원장의 마지막을 지킨 여인은 김옥이다. 서기실 과장 소속으로 김 위원장의 6차례 중국 방문과 3차례 러시아 방문에도 동행한 인물이다. 그러나 김 제1비서 집권 후 곁가지로 핍박을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져 있다.

◇유일한 백두혈통 여성 김경희=김 제1비서의 고모이자 지난해 12월 처형된 장성택의 부인인 김경희는 김 위원장의 친동생이다. 어린 시절 어머니를 잃은 김경희를 오빠인 김 위원장은 각별히 아꼈다고 한다. 김경희의 성격은 아버지인 김 주석을 빼닮아 직설적이라고 한다. 남편 장성택과의 러브스토리는 지금도 북한에서 인구에 회자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경희는 1960년대 말 김일성종합대 동기인 장성택과 사랑에 빠졌다. 아버지 김 주석이 출신성분이 좋지 못하다며 장성택을 평양에서 원산으로 쫓아내자 김경희는 틈만 나면 자신의 벤츠 승용차를 몰고 과속으로 원산까지 자주 쫓아갔고 상사병까지 걸렸다고 한다. 결국 딸에게 두 손을 든 김 주석이 이들의 결혼을 승낙했다. 그러나 김경희의 말년은 좋지 못하다. 무남독녀인 장금송은 부모의 반대로 남자친구와 헤어질 위기에 처하자 파리에서 수면제를 과다복용해 목숨을 끊었다. 남편 장성택은 만고역적이 돼 조카에 의해 처형됐다. 남편 처형 이후 김경희의 모습은 현재 북한 매체에서 사라졌다. 일각에선 사망설이 제기되고 있지만 정보당국은 김경희가 여전히 살아 있다고 확인했다.

◇퍼스트레이디 이설주=2012년 7월 북한 조선중앙TV는 능라인민유원지 준공식을 보도하며 “김정은 원수님께서 부인 이설주 동지와 함께 준공식장에 나왔다”고 전했다. 김 위원장 시절에는 전혀 상상할 수 없는 장면이었다. 이후 이설주의 행보는 일거수일투족이 관심거리였다. 북한에서 이설주는 유행을 선도하는 패셔니스트다. 김일성·김정일 배지도 착용하지 않는 등 행동에도 거침없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이설주는 이런 파격적 행보 때문에 여러 차례 구설에 오르내렸다. 지난해 9월에는 이설주와 관련된 추문을 은폐하기 위해 은하수관현악단과 왕재산예술단 단원 9명이 공개 처형됐다는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은하수관현악단에 있었던 이설주는 아버지가 공군 조종사 출신, 어머니는 중학교 교원으로 알려져 있다. 김 제1비서와의 사이에 2녀를 두고 있는 것으로 정보당국은 파악하고 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