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달의 진화] 고객님, 주문하신 택배 드론으로 날립니다

입력 2014-02-15 03:25


각국 대형 유통업체가 드론(무인 항공기)으로 물건을 배달하는 방식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최근 세계 최대 인터넷 쇼핑몰 아마존이 드론 택배 계획을 발표했고, 독일 물류업체 DHL은 드론을 이용한 시험 배송에 성공했다고 밝혔다. 도미노피자 영국법인은 이들보다 6개월 앞서 드론으로 피자를 배달하는 동영상을 인터넷에 공개했다. 이들 말고도 미국 UPS와 페덱스, 중국 SF익스프레스 등 각국 유력 물류업체가 드론 이용 가능성에 주목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남들보다 더 빨리 배달하려는 유통업계의 생리가 택배 방식의 진화를 도모하고 있는 셈이다. 아마존은 드론 도입에 그치지 않고 고객이 언제 뭘 살지 예측해 배송을 미리 시작하는 방안까지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드론 배송=아마존 웹사이트에서 물건을 주문할 때 ‘프라임 에어(Prime Air) 30분 배송’이라는 항목을 선택한다. 거대한 물류창고에선 직원이 반찬용 밀폐용기를 닮은 주황색 상자에 상품을 담고 뚜껑을 닫는다. 상자는 컨베이어를 타고 가다 프로펠러 회전축이 8개 달린 기계 아래서 멈춘다. 거미를 연상시키는 기계는 폭격기가 폭탄을 장착하듯 상자를 집어 들고 수직으로 날아오른다. 창고를 벗어나 벌판을 가로지르는가 싶더니 이내 어느 집 앞마당에 착륙한다. 상자를 내려놓은 기계는 다시 날아 유유히 사라진다. 집에 있던 남자는 기다렸다는 듯 문을 열고 나와 상자를 챙긴다.

아마존이 지난해 말 공개한 1분10여초짜리 동영상 내용이다. 현재 시험 단계인 드론 배송이 도입되면 어떤 식으로 이뤄질지 보여주는 시청각 자료였다. 당시 아마존 최고경영자(CEO) 제프 베조스는 텔레비전에 나와 이 계획을 소개했다. 프라임 에어는 아마존의 드론 배송 서비스에 붙여진 이름이다.

베조스는 드론이 반경 16㎞ 안에서 2.3㎏ 이하의 물건을 배달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아마존이 현재 배송하는 상품의 86%가 이 무게를 넘지 않는다고 한다. 아마존 드론에는 인공위성을 이용해 위치를 확인하는 GPS 기술이 적용된다. 배송지 주소만 입력하면 자동으로 찾아가도록 하는 방식이다.

◇경쟁자들=세계 최대 물류업체 DHL이 자체 개발한 배송용 무인기 파켓콥터의 존재를 공개한 건 아마존보다 일주일 뒤다. 파켓콥터는 소포를 뜻하는 독일어 파켓(Paket)과 헬리콥터를 결합한 이름이다. 지난해 6월 도미노피자 영국법인이 피자 배달 시험에 사용한 드론의 별명은 도미콥터였다. 파켓콥터는 독일 본에서 실시한 시험 비행에서 약품이 담긴 상자를 싣고 약 1㎞ 떨어진 라인 강 건너편 목표지점에 무사히 착륙했다고 업체는 전했다. 배송엔 2분 정도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파켓콥터는 회전축이 4개 달린 헬기형 드론으로 최대 3㎏의 물건을 싣고 최고 100m 높이까지 날아오를 수 있다고 한다. 시험 비행 땐 지상에서 원격으로 조종했지만 GPS를 이용한 자동 비행 기능을 갖추고 있다고 DHL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 업체는 파켓콥터를 일반 택배에 쓸 계획이 아직 없다. 기존 교통수단으로 접근이 어려운 곳에 긴급 화물을 배달하는 게 개발 목적이다.

드론 배송을 꿈꾸는 업체는 아마존과 DHL만이 아니다. 미국 최대 물류업체 UPS와 중국 SF익스프레스 등이 배송용 드론을 개발 중이고, 페덱스 창업자도 수년째 드론 배송에 관심을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선 맥주회사가 드론으로 캔 맥주를 배달하는 시스템을 개발 중이다.

◇걸림돌=드론 배송을 상용화하려면 풀어야 할 문제가 많다. 현재 미국에서 상업용 드론은 본토 상공을 날 수 없다. 미 연방항공청(FAA)은 지난해 11월 발표한 소형 무인기 규제 계획 관련 문서에서 사람이 직접 조종하지 않고 자동 항법으로 운행되는 무인기의 사용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다만 네바다주, 뉴욕주 그리피스 국제공항, 알래스카대학 등 6곳을 시험 비행 장소로 지정했다.

드론은 해킹과 도난 우려가 크다. 해커가 드론에 접근해 고객 개인정보를 빼내거나 드론 자체를 납치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원격조종 비행기로 드론을 낚아채는 모습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드론이 고객 집 앞에 놓고 간 물건을 다른 사람이 가져가지 말란 법도 없다.

누군가 드론에 돌을 던지거나 총을 쏘면 어떻게 될까. 우연히 날아온 공, 하늘을 날던 새, 아이가 실수로 놓아버린 풍선과 행사용 애드벌룬 등도 드론에겐 위협이다. 드론이 고장 나거나 부서져서, 또는 황당하게도 배터리가 바닥나 물건과 함께 사람들 머리 위로 추락하는 사고도 있을 수 있다. 악천후에 드론은 발이 묶일 것이다. 보통 10m 안팎의 오차가 나는 GPS의 한계도 고려해야 한다. 정밀도를 높여도 여러 가구가 밀집한 아파트에까지 정확히 배달하긴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예상 배송=유통업체들도 드론 배송이 당장 가능해질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문제는 얼마나 걸리느냐다.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항공학 교수 존 한스먼은 자동 무인기 안전성 확보를 위한 규정이 마련될 때까지 10년은 걸릴 거라고 전망했다. 베조스가 예상하는 기간은 4∼5년이다. 어느 쪽이 맞든 유통업체는 두 손 놓고 기다리지 않을 것이다. 아마존이 최근 특허를 받은 예상 배송(anticipatory shipping)이라는 기술은 유통업계의 끊임없는 진화 노력을 보여준다.

예상 배송은 고객이 결제를 하기도 전에 상품 배송을 시작하는 서비스다. 아마존은 고객 개개인이 과거에 뭘 샀고 평소 어떤 물건을 검색하는지, 위시리스트(구매희망목록)와 장바구니에 담긴 상품은 뭔지, 또 어떤 물건을 반품했는지 분석해 그가 언제 뭘 살지 예측한다. 아마존 웹사이트에서 고객의 마우스 커서(화면상 위치 표시)가 어떤 상품에 얼마나 머물렀는지까지 분석한다.

이렇게 예측된 상품은 특정 고객과 가까운 물류센터로 보내진다. 고객은 아직 주문하지 않은 상태다. 상품은 고객이 실제로 구매할 때까지 인근에서 기다린다. 그러다가 정말 주문이 들어오면 물류센터 직원들은 주소지를 붙여 고객에게 배달한다. 아마존은 특허 문서에서 이런 방식이 배송 기간을 얼마나 단축할지 언급하진 않았다. 언론의 질문에도 답변을 거부했다. 상품이 창고에서 고객 인근 물류센터까지 가는 시간을 고려하면 기존 방식보다 하루 이틀은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모험=아마존은 예상 배송이 대중서적에 특별히 잘 맞을 것으로 본다. 고객이 주기적으로 쓰는 화장품이나 분유 같은 상품에도 적용될 수 있다. 아마존은 고객에게 해당 상품을 제안하는 방법을 쓸 생각이다. 고객에게 필요한 물건인 데다 빨리 받을 수 있다면 주문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예상 배송은 통계를 바탕으로 한 작업이지만 어느 정도 모험에 가깝다. 아마존은 예측이 틀려 팔리지 않은 상품은 할인해 내놓거나 고객에게 선물로 보내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이 회사는 특허 서류에서 “기존 고객에게 판촉용 선물을 보내면 호감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아마존은 가장 적극적으로 변화를 시도하는 기업 중 하나다. 이 회사는 본사가 있는 미국 시애틀에서 5년간 시범운영한 식료품 당일 배송 서비스 ‘아마존 프레시’를 최근 샌프란시스코와 로스앤젤레스로 확대했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농산물, 육류, 빵 등을 3시간 단위로 원하는 시간대에 받을 수 있다. 아마존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드론과 예상 배송 등 새로운 기술을 도입하려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회사가 한국에 진출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