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화 칼럼] 중심이 핵심이다

입력 2014-02-15 01:33


“종교 없는 과학은 절름발이이고, 과학 없는 종교는 소경이다.”

앨버트 아인슈타인의 고백이다. 깊은 신앙의 소유자로 공인받던 과학자 아인슈타인의 고백은 많은 점을 시사해주고 있다. 우리들의 일반 상식은 이렇다. 종교는 신앙의 공동체다. 과학은 앎의 학문이다. 종교의 언어는 기본적으로 고백의 언어다. 과학은 인식의 언어로 소통한다. 알기 위해 믿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믿으려고 알기에 힘쓰는 자들이 있다. 그렇다면 무엇을 알고, 무엇을 믿는다는 것인가. 아인슈타인에게도 우리와 똑같이 앎과 믿음의 핵심은 신이다.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아는 것이 핵심적인 관심사다.

중세 교회는 나름의 잘못된 과학적 견해를 지니고 있었다.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는 천동설을 종교적으로 신뢰하고 있었다. 그러기에 코페르니쿠스가 거꾸로 지구가 태양의 주위를 돈다고 했을 때 코웃음을 쳤고, 갈릴레오가 이런 지동설을 강하게 주장하고 나왔을 때 그를 이단으로 정죄하고 교회에서 파문하기까지 했다. 소경의 종교였던 셈이다. 반대로 종교적 권위에 내몰려 있던 과학은 허망한 절름발이에 불과했을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이 있다. 천동설 속 하나님의 거처는 분명 지구였을 것이고, 더 깊이 들어가면 지구를 지배한 당시 교회였을 것이고, 더 나아가면 교회의 실질 주인으로 행사한 교황으로 대표되는 교권주의였을 것이다.

이런 종교를 근본적으로 바꾼 사건이 있다. 종교개혁이다. 그것은 종교적으로 보면 신앙체계와 교리와 신앙윤리를 거꾸로 바꾸어 놓은 사건이다. 과학적으로 보면 종교개혁은 천동설을 지동설로 바꾸어 놓은 사건일 것이다. 그런데 이들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피조물인 지구에 갇힌 하나님이 태양이라 이름하는 자신의 영역으로 해방된 사건일 것이다. 우주와 역사의 중심이 인간과 인간의 영역인 지구에서 태양으로 대변되는 창조주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진 셈이다. 중심의 이동, 거짓된 중심에서 참된 중심으로의 회복, 하나님은 참 하나님이 되시고 인간은 참된 인간이 되는 창조질서의 회복이 그것이다.

오늘의 한국교회는 이런 진실을 옛날 어느 어두웠던 시절의 한 사건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사실 지구는 빛을 발하지만 그것은 태양으로부터 받은 반사빛일 뿐이다. 그것은 지구의 주인으로 인정받은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타고났기에 선택받았을 뿐이다. 인간은 하나님의 원본이 아니라 사본이다. 이 사본됨을 형상이라 이름한다. 그런데 오늘날 스스로 원본인양 자처하며, 심판주인양 자처하며, 구원주인양 자처하며 자신과 다른 색깔, 다른 교리, 다른 교파, 다른 결속을 지니면 저주하고 짓밟는다. 신이 인간 주위를 돈다는 망상의 발로이고, 다른 집단들이 신격화시킨 자신의 둘레를 도는 부속품인양 오만을 부린다.

오늘날 한국교회가 살 길은 이 하나다. 하나님을 중심삼아 정직하게 교회들이 그 주위를 돌자는 것이다. 교권주의가 아니라 신권주의를 회복하자는 것이다. 보수와 진보가 갈등하고 싸우니까 아예 중간에 서서 중립을 표방하자고 하기도 한다. 좌로도 우로도 치우치지 말라는 말씀은 애매모호한 중립에 서는 말이 아니라 ‘중심’에 서서 흔들리지 말고 ‘앞’만 보고 나아가라는 말씀이다. 중심은 ‘하나님’이시고, 앞은 이 땅에 임할 ‘하나님 나라’다. 중심이 바로 서면 좌와 우는 아름다운 다양성이다. 가야 할 앞의 목표가 분명하면 진보와 보수는 다양한 풍성함이다. 한국교회의 내부세계도 그러해야 하고, 한국사회의 모든 삶의 현장도 그래야 한다. 통일 지향의 시대, 지구촌 시대, 세계화의 물결 속에서 복되고 올바르게 사는 길이 바로 여기에 있다. 중심잡기가 핵심 과제다.

(경동교회 담임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