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올림픽] 반칙에 넘어져도 오뚝이 투혼…박승희, 金보다 값진 銅
입력 2014-02-14 03:33
아쉬운 레이스였다. 금메달을 눈앞에 둔 박승희(22)는 레이스 초반 영국, 이탈리아 선수들과 뒤엉켜 넘어지는 바람에 동메달에 머물렀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500m에 약점을 보였던 한국은 1998년 나가노올림픽 이후 16년 만에 올림픽 여자 500m에서 3위에 입상하는 기쁨을 맛봤다.
박승희는 조해리(28)와 함께 한국 여자 쇼트트랙 대표팀을 이끌고 있는 베테랑이다. 어린 나이에 벌써 두 번째 올림픽 출전일 만큼 일찍부터 정상급 선수로 두각을 나타냈다. 특히 소치올림픽에는 사상 처음으로 올림픽에 3남매가 동반 출전해 화제를 모았다.
박승희는 초등학교 2학년 때 특기적성교육을 통해 처음 스케이트를 접했다. 두 살 위인 언니 박승주와 함께 빙상에 입문했고 한 살 아래인 남동생 박세영(21)도 2년 뒤부터 합류하며 3남매 국가대표의 여정이 시작됐다. 5학년부터 본격적인 선수생활에 돌입한 박승희는 2007년 15세 중학생 신분으로 태극마크를 달았다. 그해 세계주니어선수권대회에선 종합 1위에 오르며 한국 여자 쇼트트랙의 기대주로 떠올랐다.
이후 국제 대회 경험을 차근차근 쌓아가던 박승희는 2008년 세계선수권대회 3000m 계주에서 선배들과 함께 금메달을 따냈다. 한동안 개인종목에서는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다 밴쿠버올림픽 직전 월드컵 4차 대회 1000m에서 3위에 오르며 기대를 높였다. 생애 첫 올림픽 출전인 밴쿠버대회에선 1000m와 1500m 동메달을 획득해 노골드로 자존심을 구긴 여자대표팀에 작은 위안이 됐다. 당시 500m와 3000m 계주에서 억울한 실격 처리로 분루를 삼켰으나 오히려 분발하는 원동력이 됐다. 그는 올림픽 직후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개인 종합 1위를 차지하며 전성기를 열었다.
박승희는 ‘쿨’한 성격의 소유자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이미 올림픽을 경험해 대범하다. 2013 세계선수권대회 3000m 슈퍼파이널에서는 중국의 왕멍(26)이 박승희를 고의로 밀어 넘어뜨리기도 했다. 한국이 우승한다면 박승희가 종합 1위를 차지할 수 있는 상황에서 벌어진 비겁한 행위였다. 하지만 박승희는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대인배’의 풍모를 과시한 뒤 중국 선수들의 거친 경기운영을 따끔하게 지적하는 카리스마를 보이기도 했다. 탁월한 실력과 성숙한 정신력을 겸비한 박승희가 두 번째 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낼 수 있었던 이유다.
외신들도 박승희의 선전을 일찌감치 예상해 왔다. 소치올림픽 조직위원회 정보시스템인 ‘Info 2014’는 선수 소개란에서 박승희에 대해 “밴쿠버올림픽 3000m 계주에서 실격된 아픔을 딛고 중국과의 재격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선수”로 예상했다.
남자 쇼트트랙 대표팀의 이한빈(26)은 박승희의 남자친구다. 박승희의 어머니 이옥경(47)씨는 한 인터뷰에서 평소 3남매뿐 아니라 딸의 남자친구인 이한빈, 전주 출신으로 박승희 집에서 함께 생활하는 대표팀의 김아랑(19)까지 다섯 명 모두를 위해 기도한다고 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