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리 美 국무 “한·일 역사 극복하고 관계 진전시켜야”

입력 2014-02-14 03:49

존 케리 미국 국무부 장관은 13일 과거사 문제로 한층 악화된 한·일 관계와 관련해 “한국과 일본이 역사는 뒤로 하고 (양국) 관계는 앞으로 진전시켜야 한다”며 “일본과 주변국 간 우호적 관계는 미국의 이익, 한·일 양국의 이익에도 부합한다”고 밝혔다.

한국을 방문한 케리 장관은 윤병세 외교부 장관과의 한·미 외교장관 회담 뒤 열린 공동기자회견에서 “북한 핵 위협에 맞서 굳건한 (한·미·일) 3자 협력 유지가 중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미국은 두 동맹국(한국과 일본)이 서로 과거 문제는 좀 젖혀두고 3자 간, 양자 간 협력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을 찾도록 도울 것”이라며 “물밑작업을 통해 제대로 해결되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현재 가장 시급한 문제는 안보”라며 “과거보다는 현재가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케리 장관의 언급은 미국의 양대 동맹인 한·일 양국 간 관계 악화가 미국의 동북아시아 전략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미국이 한·일 관계 정상화를 위해 돕겠다는 취지로 풀이된다. 그러나 이는 일본의 정치 지도자들이 과거사를 직시하지 않는 한 한·일 관계 개선은 어렵다는 우리 정부 입장과 상치되는 것이다. 윤 장관은 기자회견에서 “일본 정치 지도자들의 역사수정주의적 언행이 계속되는 한 양국 간 신뢰 구축은 어렵다”며 “일본 지도자들이 역사를 직시하면서 진정성 있는 조치를 취해야 하고 대화를 위한 여건 조성에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이 한·일 관계에 대해 현재에 방점을 둔 반면 우리 정부는 과거 청산이 우선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케리 장관은 북한이 이산가족 상봉 행사를 이유로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을 요구한 데 대해 “한·미 군사훈련은 변하지 않고 더 커지지도 않고 매년 똑같은 시기에 똑같은 방식으로 할 것”이라며 “한·미 연합 대비 태세에는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이어 “이산가족 상봉 같은 인도적 문제를 다른 문제와 결부시키는 것은 옳지 않다”고 덧붙였다.

또 양국은 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북한의 핵 개발과 대화 공세 등 어떤 가능성에도 만반의 대비가 돼 있다는 점을 재확인했다. 검증 가능한 한반도 비핵화가 양국의 공통 목표이며, 북한 변화를 위해 중국의 건설적 역할을 독려한다는 데도 인식을 같이했다.

앞서 박근혜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케리 장관을 접견한 자리에서 “통일 한국은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고 역내 평화 및 번영 증진에 적극 기여하게 될 것”이라며 “(통일은) 남북한뿐만 아니라 주변국에도 큰 혜택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북한이 비핵화의 확실한 의지와 행동을 보여준다면 국제사회와 함께 북한을 지원하겠다는 의사를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미국 백악관은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4월 하순 한국 일본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아시아 4개국을 순방한다고 12일(현지시간) 공식 발표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4월 22일부터 1박2일간 일본을 방문하고 23일부터 1박2일간 방한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은 당초 한국을 제외한 3개국 순방 일정을 계획했으나 막바지에 한국을 끼워 넣은 것으로 알려졌다. 한·일 갈등이 심각한 상황에서 일본만 방문할 경우 한국 내에서 일어날 후폭풍을 우려한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과 오바마 대통령은 정상회담을 통해 굳건한 한·미동맹을 재확인하고 북한 비핵화 촉진 방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지속적 이행 문제를 논의할 예정이다.

남혁상 기자, 워싱턴=배병우 특파원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