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 고위급 2차 접촉] 무산 하루 만에 만남 제의… 北 다른 속사정 있나
입력 2014-02-14 03:33
북한이 1차 고위급 접촉 무산 하루 만인 13일 접촉 재개를 제의하고 우리가 이를 수용함으로써 6년여 만에 재개된 남북 간 대화모드는 다시 모멘텀을 갖게 됐다. 자칫 무산 위기에 놓였던 이산가족 상봉 행사가 정상적으로 진행될 가능성이 커지는 등 꽉 막힌 남북관계에도 긍정적 신호로 읽힌다. 우리 정부는 전날 접촉에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의 기본 취지를 북측에 충분히 설명했다. 인도주의적 사안과 정치·군사적 문제를 연계하지 않을 것이며, 낮은 단계의 신뢰 구축을 통해 높은 수준의 전폭적 지원으로 나아가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특히 북한이 핵개발 포기 문제 논의를 전제로 우리 측의 대규모 지원을 요구해오면 으레 이를 받아들이던 과거 정부의 ‘패키지 딜’은 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1차 접촉에서 패키지 딜을 타진했던 북한이 우리 정부의 ‘원칙’과 거부 입장을 확인하고도 2차 접촉을 먼저 제의했다는 점에서 우리 측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다른 속사정이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장성택 처형 이후 대외 투자 유치가 어려운 상황에서 남북 간 교류가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또 함흥 비료공장 폭발사고 등으로 비료와 식량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인도적 지원이 더욱 절실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북한이 이번 접촉에서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려는 의지가 강하다는 분석도 있다. 북한은 지난달 24일 국방위 중대제안을 설명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하면서 ‘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의 특명에 따라’라고 밝혀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최근 북한의 조치가 최고지도부의 결심에 따른 것임을 분명히 했다. 따라서 북한이 이번 접촉에선 이산가족 상봉과 관련해 보다 전향적인 자세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아울러 2차 접촉에선 전날 전혀 다뤄지지 않은 금강산 관광 재개, 대북 인도적 지원사업, 신규투자 등을 금지한 5·24조치 해제에 대한 내용이 다뤄질 가능성도 있다. 우리 측도 박근혜 대통령이 역점을 두고 있는 비무장지대(DMZ) 세계평화공원 조성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당초 비밀 접촉을 제안했다는 점에서 남북이 외부에 공개하지 않은 추가협의 내용이 있지 않느냐는 분석도 있다. 구체적으로 장관급 회담 이상의 고위급 회담 개최와 비핵화에 대한 구체적 협의 등이다.
그러나 북한이 2차 접촉에서도 여전히 자신들의 입장을 고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순 없다. 북한이 군사적 대치 상황 등을 이유로 오는 24일 시작될 키 리졸브 연습을 이산가족 상봉 행사 뒤로 미루자고 계속 주장한다면 이번 접촉 역시 시간만 끌고 성과는 없는 대화가 될 수밖에 없다. 우리 정부는 한·미 연합군사훈련이 최근의 남북 상황과는 상관없이 진행된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한 상태다. 이번 접촉에서도 양측이 평행선만 달린다면 남북 간 대화는 한동안 재개되기 어렵고, 남북관계도 오히려 더 악화될 수 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