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치올림픽] ‘대장정 7304일’ 끝낸 이규혁 “올림픽 메달 없지만 행복”
입력 2014-02-14 01:35
“나는 부족한 선수로 마감했다. 그러나 올림픽 때문에 많이 배웠고 성숙할 수 있었다. 앞으로 부족한 것을 채우는 삶을 살겠다.”
‘노메달 영웅’ 이규혁(36·서울시청)이 철학자 같은 말을 쏟아냈다. 이규혁은 11일(현지시간) 소치 동계올림픽 남자 스피드스케이팅 1000m에서 21위를 기록했다. 그의 은퇴경기였다. 차가운 얼음판 위에서 모든 것을 쏟아낸 그는 그대로 쓰러져 한동안 일어나지 못했다. 마지막 올림픽 무대에 나선 이규혁은 자신의 20년 올림픽 역사를 ‘무관의 제왕’으로 마감했다.
그는 1991년부터 20년 넘게 태극마크를 지켜 온 한국 스피드스케이팅의 산증인이다. 세계스프린트선수권에서 2007, 2008, 2010, 2011년 네 차례 우승했고 2011년에는 종목별 세계선수권대회 500m 정상에 올랐다. 1997년에는 1000m(1분10초42), 2001년에는 1500m(1분45초20)에서 세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번 소치에서는 한국 선수로는 최초로 여섯 번째 올림픽에 출전했다.
1994년 2월 14일 릴레함메르 대회 이후 7304일 동안 도전했던 올림픽 메달의 꿈을 접은 이규혁은 “지금 기쁜 것은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이고, 슬픈 것은 이제 이 무대에 설 수 없다는 것”이라고 애써 눈물을 감췄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올림픽이라기보다는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로서 마지막 대회인 것이 좀 더 나한테 와닿는다”며 “부상도 있고 아픈 데도 많은데 이것조차 마지막이기 때문에 즐겁게 하려고 노력했고, 마지막 레이스를 마쳤기 때문에 기쁘다”고 말했다.
그의 마지막 레이스는 여러모로 아쉬웠다. 누군가는 그를 ‘비운의 스케이터’라고 부른다. 세계기록까지 세웠지만 올림픽 메달을 따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노메달의 영웅’인 자신은 후회가 없다고 했다.
은퇴 경기를 마친 이규혁의 얼굴엔 눈물 대신 미소가 피어올랐다. 그에게 올림픽 메달은 36세까지 선수생활을 이어올 수 있게 한 꿈이자 목표였다. 하늘은 그에게 메달을 허용하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소중한 ‘행복한 열정’을 선물했다. 이규혁은 13일 새벽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선수로서 마지막 밤을 마무리했다. “응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피드스케이팅은 많은 시간 나를 힘들게 했지만 그것보다 더 많은 행복을 줬습니다. 나는 오늘 행복합니다.”
윤중식 기자 yun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