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서대필’ 강기훈씨 22년 만에 누명 벗다

입력 2014-02-14 02:32


‘유서대필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강기훈(50·사진)씨가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동료 간부였던 김기설씨의 자살을 방조하고 유서를 대필한 혐의로 1992년 징역 3년을 선고받은 지 22년 만이다.

서울고법 형사10부(부장판사 권기훈)는 13일 강씨에 대해 “김씨의 자살을 방조하고 유서를 대필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며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다만 재심 대상이 아닌 강씨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에 대해서는 징역 1년에 자격정지 1년의 형을 별도로 선고했다. 강씨가 재심 선고 전 이미 3년 형기를 채웠기 때문에 이번 선고로 다시 수감되지는 않는다.

유서대필 사건은 1991년 5월 김씨가 서강대 본관 건물 옥상에서 노태우정권의 퇴진을 외치며 몸에 불을 붙이고 투신자살하면서 시작됐다. 검찰은 강씨가 김씨의 유서를 대신 써주고 자살을 방조했다며 강씨를 구속 기소했다. 강씨는 이듬해 대법원에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만기 복역했다. 그러나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는 2007년 11월 ‘유서의 필체는 강씨가 아닌 김씨의 필체로 보인다’는 재감정 결과를 토대로 진실규명 결정을 내렸다. 대법원은 2012년 10월 재심 개시를 결정했다.

재심 재판부는 유죄 선고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1991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필적감정 결과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예를 들어 김씨는 ‘보’자를 ‘오’자처럼 보이게 썼다. 유서에도 찾아볼 수 있는 이 특징이 강씨의 필적에서는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 감정인은 유서의 필체와 강씨의 필체가 다르다는 유력한 증거인 이 특징을 놓쳤다. 오히려 유서의 ‘보’자를 ‘오’자로 잘못 판독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또 감정인이 1991년 재판 과정에서 혼자 감정한 결과를 4명의 감정인이 공동 심의한 것으로 위증했던 점도 감정서의 신빙성을 떨어뜨렸다.

강씨는 선고 직후 “당시 고통받았던 수많은 사람을 기억한다”며 “조금이라도 (그분들 마음이) 풀렸으면 한다”고 말했다. 검찰은 “판결에 대해 아쉽다”며 “판결문 검토 후 상고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정현수 나성원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