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de&deep] 녹색금융·창조금융… 정부 입맛따라 춤추는 일회성 상품
입력 2014-02-14 02:32
창조금융 어디로 가나
최근 금융권에서 주된 화제는 ‘창조금융’이다. 박근혜정부가 창조경제를 정책 기조로 내세우자 은행들은 너도나도 창조금융이 혁신과 미래수익창출의 창구라고 외치고 있다. 금융사 수장들은 올해 목표에 창조금융 실현을 끼워 넣고 유관기관과의 양해각서(MOU) 체결, 관련 상품 출시 등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처음 보는 모습은 아니다. 5년 전 이명박정부 당시엔 녹색금융이 그 자리를 차지했었다.
◇봇물 터진 창조금융=권선주 IBK기업은행장은 지난 12일 취임 후 첫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강조하는 창조경제 활성화를 위해 기업은행이 전체 금융권 창조금융 관련 사업의 절반을 차지하도록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에 3800억원을 지원하겠다는 구체적인 방안도 내놨다. 정부 정책에 맞춘 움직임은 공공기관으로 재지정된 기업은행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은 아니다.
한동우 신한금융그룹 회장은 지난달 10일 2014년 경영전략 발표 자리에서 ‘고객을 위한 창조적 종합금융 실현’을 목표로 세웠다. 이미 지난해 신한은행은 창조금융의 일환으로 기업의 신용등급 대신 기술력 보유 여부로 대출 취급 여부를 결정하는 ‘연구개발 우수기업 대출’을 출시했다.
KB국민은행은 아예 지난해 3월 은행장 직속의 ‘KB창조금융추진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이후 창조금융을 내세워 ‘KB예비창업자 기술보증부 대출’과 ‘KB기술창조기업 총액한도대출’ ‘KB청년드림대출’ 등 다양한 대출상품을 내놨다.
우리은행은 창조금융의 핵심인 우수 기술력 보유 중소기업 지원을 위해 대기업과 협력업체의 동반성장을 지원하는 ‘우리상생파트너론’을 선보였다. 대기업과 거래하는 1∼3차 협력업체들이 외상매출채권을 할인 매입할 때 낮은 금리로 대출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중소기업의 성장을 돕겠다는 목적이다.
박근혜정부가 발표한 ‘창조경제 실현계획’에서 보듯 ‘창업→성장→회수→재투자·재도전’의 벤처창업 생태계 선순환이 이뤄지기 위해선 윤활유로서 금융의 역할이 중요하다. 이러한 측면에서 정부 정책에 따라 금융권이 창조금융을 활성화하는 것은 반길 일이다. 그러나 전 정부의 녹색금융 등의 사례에서 볼 때 은행이 정부 정책에 구색을 맞추기 위해 일회성으로 시행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녹색금융’은 지금 어디로?=5년전 이명박정부 당시 녹색성장이 대두되면서 은행들은 녹색금융 상품을 앞다퉈 선보였다. 하지만 지금은 녹색금융에 대한 상품 홍보도, 상품 자체도 찾아보기 어렵다.
녹색협의회에서 운영하는 녹색금융종합포털에 따르면 2012년 이후 출시된 녹색금융 상품은 없다. 시중은행에서 출시한 녹색 예·적금 상품은 2008년 1개, 2009년 13개, 2010년 3개, 2011년 4개, 2012년 3개였다. 카드 역시 마찬가지로 2008년엔 4개, 2009년 12개, 2010년 4개, 2011년 9개까지 늘었으나 2012년엔 2개가 전부였다. 정부에서 녹색성장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2009∼2011년 사이에 상품 출시가 몰려 있다. 관련 대출상품 역시 이명박 대통령 집권 2년차인 2009년 17개로 가장 많았고 이후에는 별다른 실적이 없다.
녹색금융은 2008년 이명박 대통령이 국가 비전으로 ‘저탄소 녹색성장’을 제시하고 이듬해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회가 출범하면서 금융권에서 각광받았다. 고객이 정상적인 금융활동을 하면서 금융회사의 자금운용과 기업의 경영활동이 친환경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금융상품들을 내놓으면서 은행들은 한목소리로 녹색금융을 경영목표라 외쳤었다.
◇정권과 함께 사라지는 일회용 정책=금융권의 부화뇌동 못지않게 전임 정부의 정책을 계승하기보단 새로운 정책을 내세워 밀어붙이기만 하는 정부의 고질병도 문제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13일 “현 정부가 창조금융을 강조하니 녹색금융보다는 창조금융에 집중하게 되는 게 사실”이라며 “아무래도 새 정부의 입맛에 맞추게 된다”고 말했다. 녹색금융의 소멸과 함께 노무현정부 때 나왔던 ‘동북아 금융허브론’ 역시 정부 정책의 연속성 부족으로 1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표류하고 있다.
2003년 12월 참여정부가 추진한 동북아 금융허브론은 2015년까지 한국을 동북아 3대 금융허브로 키우기 위해 2012년까지 세계 50대 자산운용사를 국내에 유치하겠다는 내용을 골자로 한다. 정책의 허실을 드러내는 명백한 증거는 서울 여의도의 서울국제금융센터(IFC) 건물이다. 2011년 11월에 문을 열었지만 처음의 원대한 목표와 달리 IFC에 입주한 50대 자산운용사는 물론 입주업체 가운데 금융사조차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한국금융연구원 구본성 선임연구위원은 “상황 변화에 따라 새 정부의 새로운 정책이 필요한 것은 사실이나 신산업을 육성하고 새로운 자금조달 방식을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정책적 연속선상에서 부진한 부분들을 보완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런 측면에서 “현 정부도 녹색금융 중 필요한 일부를 받아들이고, 다음 정부 역시 창조금융을 중소서민금융의 기반으로 보고 필요한 부분은 수용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박은애 기자 limitle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