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21세기 지구촌… 여성 억압·착취는 아직도 진행형
입력 2014-02-14 01:37
가부장제와 자본주의/마리아 미즈/ 갈무리
1986년 영어로 초판이 발표되고 2년 뒤 독일에서 출간된 책. 당시 자본주의 체제의 가부장적 착취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며 사회적으로 논란을 야기했다. 그 이후 무수한 논란을 거듭하면서 페미니즘의 고전 반열에 올랐다. 이 책이 페미니즘 운동이 꽤 거셌던 한국 사회에 28년 만에 처음 소개된다는 사실이 놀라울 정도다.
독일 쾰른대학의 사회학과 교수인 저자는 전 세계적 차원의 자본축적 체제에 맞서 다른 삶을 추구하는 에코페미니즘의 선구자다. 그는 이 책에서 유럽을 비롯해 아시아와 제3세계 여성의 ‘가정주부화’ 과정을 추적하며 자본과 권력이 여성을 ‘가정’에 묶어둔 뒤 어떤 식으로 여성 착취가 이뤄져왔는지 이야기한다.
이 과정에서 그의 비판은 마르크스주의자와 페미니스트 양쪽을 다 겨눈다. 먼저 임금노동에 초점을 맞춰 자본주의 경제와 생산 활동을 분석한 마르크스주의자들은 가사노동으로 대표되는 여성의 노동을 소홀히 다뤘다고, 또 자본주의 체제가 여성을 억압하는 구조는 그대로 둔 채 남성과 평등해지기를 바랐던 페미니스트들의 주장 또한 모순이라고 비판한다.
저자는 근대 자본주의의 문제가 오늘날은 ‘행복한 가정주부’라는 이미지가 만들어낸 소비주의로 이어지고 있는 현실을 진단하고, 소비주의로부터의 해방을 주장한다. 소비주의야말로 인간을 인간답지 못하게 만드는, 파괴적인 생활환경을 수용하게 만드는 ‘마약’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한 발 더 나아가 자급적인 생활 방식을 제시한다. 기초적인 생필품은 직접 생산하는 정도의 자급 사회만이 자연과 다른 인간에 대한 억압이나 착취 없이 자유로운 사회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페미니스트는 외부적 생태환경, 경제, 정치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과 여성의 관계를 중심에 둔 사회적 생태 환경에서 출발한다. 생태적 경제적 정치적 자립성을 추구한다면 여성의 몸, 새로운 생명을 창조할 수 있는 여성의 생산 능력, 노동을 통해 삶을 유지하는 생산적 능력, 여성의 섹슈얼리티의 자율성에 대한 존중에서 출발해야 한다.”
28년 전 나온 책이지만 이번 한국어판 서문에서 저자가 밝힌 것처럼 ‘여성에 대한 억압과 착취, 자연에 대한 폭력은 세계적 규모로 확대되고 있기’에 여전히 유의미한 대목이 많다. 저자의 에코페미니즘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이들에겐 그가 공저자로 참여한 책 ‘에코페미니즘’과 ‘자급의 삶은 가능한가’가 참고가 될 것이다. 최재인 옮김.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