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소외… 고독… 노인이 되어 늙음을 응시하다

입력 2014-02-14 01:37


퇴적 공간/오근재/ 민음인

“교수라는 직함을 반납하는 동시에 나는 ‘노인’이 되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공인된 직업으로 일정 수준의 소득을 벌어들이지 않는 이상, 나이든 자는 개인의 선택이 아닌 사회적인 잣대로 ‘노인’으로 분류된다는 사실을 알았다. 이는 엄청나게 충격적인 깨달음이었다. 갑자기 고독이 밀려왔다.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노인이라는 존재에 대해 진지한 질문이 뒤따랐다. 그리고 어느 날 나는 집을 나섰다.”(‘저자의 말’)

홍익대 조형대학장을 지낸 오근재 교수는 2011년 대학에서 퇴임한 뒤 몇 달 동안 서울 종로 3가에 위치한 탑골공원과 종묘시민공원, 그리고 인천자유공원 등 노인들이 운집한 공간을 탐사하며 그 장소를 ‘퇴적 공간’이라고 명명한다. 퇴적 공간은 도시의 인위성에 밀리고 속도에 적응하지 못한 인간들이 강 하구의 삼각주에 쌓여 가는 모래섬처럼 몰려드는 모습에 빗대 저자가 만든 조어다. 다시 말해 가정이라는 집단에서의 1차적 추방과 사회적 변화에 따른 2차적 추방이 교차하면서 형성된 공간을 일컫는다. 과연 퇴적 공간에 모여 있는 노인들은 어떤 심리 상태일까.

저자에 따르면 노인들 개개인은 하나의 퇴적 공간에 운집해 있지만 이들 무리와 다른 존재이길 희망하며 자신을 은폐하고자 하는 성향을 드러낸다. 예컨대 종묘시민공원의 마이크를 잡고 소위 시사담론을 펼치고 있는 구역, 바둑과 장기를 두는 게임구역, 이들과 상관없이 자기들만의 대화와 사색을 즐기는 사람들의 구역 등의 독특한 문화가 있지만 노인들은 그 문화에 포함되고자 공통성을 찾으려고 노력하면서도 끊임없이 그들과 다름을 강조하는 이중적인 모습을 보인다는 것이다.

“즉, 자신은 사회로부터 소외되거나 격리되어 떠밀리다시피 이곳을 찾는 노인이 아니라 어떤 처지의 노인들이 그곳을 찾으며 또 어떤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지 궁금하여 한두 번 둘러보는 관찰자로 남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관찰자로 남고 싶어 한다’라는 것은 근로 공간의 시민이 되고자 하는 기대심리를 반영하는 표현이다. 실제로 노인들은 몸은 종묘공원에 두고 있지만 의식의 지향점은 현실 공간에 두고 있다.”(156쪽)

저자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갖가지 사연을 안은 노인들이 탑골공원과 종묘시민공원으로 몰려드는 것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 이웃을 보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기 때문”이라며 이렇게 지적한다. “탑골공원의 노인들은 노동의 현장을 벗어난 잉여인간들이고, 이제는 상황에 따라서 더 이상 접대용 표정을 지을 필요가 없는 잉여얼굴의 소유자들이다. 그들은 자기 표정을 무대 위에서 끌어내려 자기의 몸으로 가져옴으로써 소외된 자신의 본 모습을 찾아가는 중이다. 따라서 탑골공원은 역사적 유적지라기보다 이 시대의 잉여얼굴의 수납공간에 가까운 느낌을 준다.”(135쪽)

저자는 노인들이 지닌 소외와 고독의 감정을 가감 없이 묘사하면서 우리가 노인문제를 모른 척할 경우 늙음과 죽음, 나아가 인간이 자연의 산물이라는 본원적인 사유를 받아들이는 감각 자체를 상실하게 될 것이라 경고한다. 저자 자신이 ‘노인’이 되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카프카의 단편 ‘변신’에 빗대어 벌레로 비유하는 등 노인문제를 문학과 철학, 역사와 미술작품을 넘나드는 인문학적 해석으로 고찰하고 있는 게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이다.

정철훈 문학전문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