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北, 이산상봉 흔들지 말고 진정성 보여라
입력 2014-02-14 01:41
6년여 만의 남북 고위급 접촉에서 북측이 이산가족 상봉과 키 리졸브 한·미 연합군사훈련을 연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드러났다. 북측은 오는 24일부터 시작될 한·미 군사훈련을 20∼25일 열기로 합의한 이산상봉 행사 이후로 연기할 것을 요구했다는 것이다. 훈련을 강행할 경우 훈련과 상봉행사 일정이 겹치는 24∼25일의 이산상봉에는 응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참으로 실망스럽다. 우리 정부가 인도주의적 사안과 정치·군사 문제를 연계하지 말 것을 수없이 요구했음에도 또다시 트집잡기를 하고 나선 것은 상투적이며 구태의연한 대남전략의 표현이다. 상호 진정성을 바탕으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가동하겠다는 박근혜정부의 구상에 찬물을 끼얹는 태도다. 모처럼 성사된 고위급 접촉을 계기로 실질적인 남북관계 개선책을 내놓기는커녕 이산상봉 무산 협박이나 하다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북한은 이번 고위급 접촉에서 모종의 뒷거래를 통한 남북 현안의 일괄타결 가능성을 타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측은 이를 거부한 것으로 전해졌다. 북한에 마냥 끌려다녔던 과거 정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판단에서라고 한다. 이산상봉 성사가 남북관계 개선의 첫 단추가 될 것임을 강조하며 북에 진정성을 행동으로 보이라는 박 대통령의 요구와 무관치 않다. 우리 정부의 이런 자세는 시의적절하다. 이산상봉을 한·미 군사훈련과 흥정하려는 북한의 태도는 어떤 경우에도 용납하지 말아야 한다.
정부는 북측이 또다시 이산상봉 행사를 무산시키거나 반쪽 행사가 되도록 할 경우 국제적 비난은 말할 것도 없고 남북관계 진전도 있을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주지시켜야겠다. 북한은 2년 전부터 중국의 경제 지원이 끊기는 바람에 남한과의 교류협력 사업이 절실한 상황이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로서는 이산상봉이 안 되면 금강산 관광 재개도 안 된다는 입장을 견지할 필요가 있다.
사실 북한은 지난 5일 남북 적십자 실무접촉에서 ‘20∼25일 이산상봉’에 합의할 때 한·미 군사훈련이 24일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때는 아무런 이의제기 없이 합의해 놓고 이제 와서 훈련 연기를 요구하는 것은 그 저의가 의심스럽다. 한·미 군사훈련 때문에 이산상봉이 난관에 처했다고 대내외적으로 선전하기 위해 날짜를 그렇게 잡은 것 아니냐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은 막판에 ‘통 큰 양보’를 한다며 예정대로 행사를 치르자고 제의해 올 가능성도 있다.
이런 불안정한 상태에서 상봉행사를 원만히 치르기는 어려워 보인다. 북의 선전전에 이용당하기 십상이다. 정부는 14일로 잡힌 두번째 고위급 접촉에서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