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김경래 (19·끝) “하나님 사랑 나눈 지인들 미안하고 고맙습니다”
입력 2014-02-14 01:36
올해는 한국기독교선교 130주년이 되는 해다. 한경직 목사와 함께 100주년을 준비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30년이 더해졌다. 한국 교회의 분열과 반목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사랑은 허다한 허물을 덮는다(벧전 4:8)고 했다. 우리 교회가 하나님 안에서 연합과 일치를 다짐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교단을 초월해 떡을 나누고 비빔밥을 먹는 은혜로운 행사가 있으면 좋겠다.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재단의 사역에 대해 불만을 가진 이들이 있다는 것을 잘 안다. 우리 모두 하나님 안에서 함께 사역하길 바란다. 선교사들이 묻힌 이 터가 비단 우리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 전체의 용광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허락한다면 양화진에 교단 구분 없는 원로들의 ‘사랑방’을 만들고 싶다. 가능하기를.
빨리 통일이 되길 바란다. 북한 지하 교회의 영성은 남한 교회를 능가할 것이다. 북한은 정부 수립 전후 30만∼50만명의 순교자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영성은 고난 속에서 피어난다. 이 영성에 뿌리 내린 북한 교회가 남한 교회를 영적으로 이끌어갈 것이다. 지하교회에서 “주여 어서 오소서”라며 울부짖을 것이다. 우리는 안락에 기대어 영적으로는 죽어가고 있는지 모른다.
칠순을 넘기자 선물이 예고 없이 도착했다. 이별도 예고 없었다.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는 2002년 1월 나를 민주화운동 관련자로 인정한다고 통지했다. 1980년 신군부 등장 후 강제 해고됐던 나는 비로소 명예를 회복했다. 신군부가 권력을 찬탈해선 안 된다는 강연이 빌미였다. 당시 나의 해직사유는 ‘부조리 언론인’이었다.
사랑하는 아내는 2008년 3월 내 곁을 떠났다. 아내 차은희 권사는 급성폐렴으로 누운 지 사흘 만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이 세상 사는 동안 하나님 믿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 믿는 남편 주시고 그런 남편과 사랑하며 살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귀한 자식 주셔서 감사하고 그 자식들 모두 하나님 믿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내의 마지막 기도였다.
유언은 “예수 잘 믿어라”였다. 아내의 장례식은 축제처럼 진행됐다. 찬양은 천국으로 배웅하는 환송가 같았다. 조화는 화환처럼 빛났다. 아내의 표정도 평화로웠다. 나는 장례식 후 아내의 사진을 거실 벽에 걸었다. 사진 밑에 ‘좋은 사람’이라는 글을 붙였다. 빨간 장미 한 송이도 달았다. 나는 아내처럼 기쁜 마음으로 천국에 가고 싶다.
지난해 4월 나는 회고록 ‘미안합니다, 고맙습니다’ 출판기념회를 서울 양화진로 양화진외국인선교사묘원 선교기념관에서 열었다. 초라한 나의 책 출판을 축하하러 500명 가까이 몰려왔다. 나는 “예수 믿고 지금까지 살아온 것에 감사하다. 믿음의 동역자들로부터 신앙을 배운 데 감사하다”고 인사했다.
이어령 박사는 “내가 뒤늦게 예수를 믿게 된 데는 김 장로의 영향이 컸다”고 말했다. 손봉호 서울대 명예교수는 추천사에서 “고 이동원 장관은 김 장로가 여러 번 청탁을 했는데 자기를 위해 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고 말한 기억이 난다”며 “김 장로같이 좋은 사람을 만난 저는 하나님으로부터 큰 복을 받은 사람”이라고 과찬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내 자랑만 늘어놓은 거 같아 송구해진다. 내가 겪은 시절을 후대와 공유하고자 기록을 남긴다. 내 부탁에 귀한 시간을 내주고 지갑을 열어준 이들에게 미안하고 고맙기 그지없다.
정리=강주화 기자 rul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