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공부에 지친 어린이들의 유쾌한 판타지
입력 2014-02-14 01:36 수정 2014-02-14 10:36
그림자 도둑/웅진주니어
학교 수업 끝나면 바로 수학, 영어, 논술 학원을 거쳐 저녁때나 집에 오는 아이. 입맛이 없어 수저를 들었다 놓는 아이 뒤통수에 대고 “학교 숙제 있지? 학원 과제도 많지?” 하면서 책상 앞으로 등 떠밀어 보내는 엄마. “어, 저거 우리 집 풍경인데!” 하는 엄마라면 어느 날 낭패를 겪을 수 있다. 자녀의 그림자가 갑자기 사라져 귀신이라고 놀림 받게 될지도 모른다. 정말이냐고? TV 뉴스에도 나왔는데, 못 보셨는지.
그 뉴스에 따르면, 모 초등학교 3학년 3반에서 가장 공부 잘하고 똑똑하고 예쁜 상아가 어느 날 아침 등굣길에 그림자가 없어졌다. 같은 반 개구쟁이 대호가 이를 알아채고는 놀렸다. “귀신이래요, 귀신!” 다음날 상아는 학교에 오지 않았다. 그런데 그날, 또 4반의 우등생 중의 우등생 현이의 그림자가 없어졌고, 다음날에는 원준이의 그림자가 사라졌다. 그 이후 매일매일 공부 잘하고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인기 있는 아이들의 그림자가 없어지자 과학자 정신과의사 등 각계 전문가들이 나서서 한마디씩 했다. 아이들은 모두 불안에 떨었지만 대호는 안심했다. 공부도 못하고 인기도 없는 자기의 그림자를 훔쳐갈 리가 없기 때문에. 그런데 어느 날 대호의 그림자도 없어졌다. 대호는 그림자를 잃어버린 순서가 학교에서 가까운 아파트에 사는 차례라는 걸 알아챘다. 정호네 아파트에 숨어 있던 대호는 마침내 잃어버린 그림자들을 보게 됐다.
“학원가지 않고 야구하고 싶어서!” “수학공부 대신 그림 그리고 싶어서!” 와글와글…. 그림자들은 주인을 떠난 이유를 댔다. 모두 “공부만 하기 싫어서!”였다. 대호 그림자만이 “난 이제 애들 괴롭히기 싫었다”고 털어놨다. 대호는 그림자들에게 “엄마 아빠에게 하고 싶은 것을 말하자”고 구슬려 그림자들을 친구들에게 되돌려주었다.
다음날 그림자를 되찾은 아이들은 부모가 원하는 것이 아닌 자신의 꿈을 생각하며, 예쁜 웃음을 머금고 학교에 왔다.
공부 때문에 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속에만 담아 둬야 하는 아이들. 그 답답한 현실을 그림자라는 판타지 요소를 활용해 재미있게 풀어낸 동화다. 부모들은 “공부만 하라고 다그치면 아이들의 소중한 꿈을 잃게 될지도 모른다”는 메시지를 귀담아들어야 할 것이다. 글 임제다·그림 배현정.
김혜림 선임기자 m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