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길] 지식혁명·사상전파… 세상을 바꾸다
입력 2014-02-14 01:36
책의 탄생/뤼시앵 페브르·앙리 장 마르탱/돌베개
책과 혁명/로버트 단턴/알마
서점 vs 서점/로라 J. 밀러/한울 아카데미
책, 정확히 ‘종이책’이 위기에 처했다는 사실은 더 이상 뉴스가 아니다. 과거 동네 어귀마다 들어서 있던 서점들, 특히 ‘오프라인 서점’의 몰락을 말하는 것도 새삼스러운 일이 돼 버렸다. 이런 마당에 책과 서점의 ‘과거’를 되돌아보는 게 과연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그럴지도. 하지만 또 누가 알겠는가. 이렇게 ‘옛날이야기’를 읽다 보면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지금 문제를 풀 수 있는 실마리를 찾게 될는지. 이번 주 유난히 ‘책과 관련된 책’들이 쏟아져 나온 것 역시 그런 기대와 바람의 발로가 아닐까.
책이란 무엇인가… ‘책에 관한 책’ 3권
‘책의 탄생’ 책에 관한 책 중 단연 최고로 꼽히는 책이다. 프랑스 아날학파의 창시자인 뤼시앵 페브르와 문헌학자 앙리 장 마르탱이 공동 집필해 1958년 프랑스에서 초판을 발표했다. 인류 최고의 발명품인 책을 가능케 한 인쇄술과 제지술을 중심으로 책의 제작, 유통과 판매, 보급으로 인한 사회적 변화까지 폭넓게 조명했다. 역사 서술에 있어 사회문화사로 이행하는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는, 문헌학사의 고전이다. 이 책이 반세기 만에 한국에 번역 소개됐다는 사실 자체도 사회적 함의를 담고 있다. 쏠림 현상이 심한 한국 출판의 현주소를 보여준다고나 할까.
책을 보면 예나 지금이나 책으로 먹고 살겠다는 생각을 갖기란 쉽지 않았던 것 같다.
“출판사들의 회계 장부를 살펴보면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일부 예외를 제외하면 도심 지역이라 할지라도 출간된 책 한 권의 판매 부수가 많지 않았다.” 15세기∼18세기 출판업자 겸 서적상들이 2000부 이상 책을 찍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고 한다. 요즘 국내 출판사들의 초판 발행 부수 역시 2000부 정도다. 최근 들어 부쩍 그 기준이 1000부, 일부 작은 출판사의 경우 800부 등으로 떨어지고 있지만. 어쨌든 당시 최고 베스트셀러로 꼽히는 에라스무스의 ‘우신예찬’도 초판 1800부를 찍었다고 한다.
책의 유통 과정을 살펴보면, 그 시대 책을 만들고 보급한 이들에게 감사해야지, 하는 생각이 들 뿐이다. 당시 프랑스에서 찍은 책들은 이탈리아, 스위스는 물론 네덜란드, 오늘날 스페인인 에스파냐 등으로 퍼져 나갔다. 프랑스 리옹에서 이탈리아와 에스파냐로 책을 보내던 지역 업자들은 육로를 통해 알프스 산맥을 통과하거나 대서양을 안전하게 건너는 루트를 찾아야 했다.
경제적인 어려움 이상의 고난을 감내해야 경우도 있었다. “새로운 사상을 전파하기 위한 투쟁에서 제일선에 있던 인쇄업자들과 서적상들은 소송이 제기될 경우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었으며, 언제나 취조 대상이 되었고, 그에 따라 감옥에 가거나 화형을 당하는 일도 많았다.” 강주헌·배영란 옮김
‘책과 혁명’ 책이 사회 변혁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고 싶다면 로버트 단턴의 ‘책과 혁명’을 권한다. 단턴은 프랑스 혁명이 어떻게 일어났는지에 대한 답을 ‘18세기 프랑스인은 어떤 책을 읽었나’라는 질문으로부터 찾기 시작한다.
당시 대중들은 ‘오를레앙의 처녀’ ‘방황하는 창녀’와 같은 포르노그래피에 열광했는데, 특히 주인공들의 사랑이 신분 질서에 가로막힌 상황에 슬퍼하고 그런 상황을 낳은 현실에 분노하면서 이른바 혁명의 기운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책 말미 4부에 ‘뒤바리 백작부인에 관한 일화’ ‘2440년, 한 번쯤 꾸어봄직한 꿈’ ‘계몽사상가 테레즈’까지 당시 사람들을 열광시켰던 금서의 정체를 만나볼 수 있다.
단턴은 “책의 역사는 인문과학의 새로운 분야로서 문학과 문화사 전반에 대해 좀 더 넓은 안목을 마련해줄 수 있다”고 금서 목록 분석 작업의 의미를 설명한다. 한발 더 나아가 서적의 역사는 곧 의사소통의 역사가 될 수 있으며, 동시에 이념의 표현과 여론의 형성이라는 영역과도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주명철 옮김
‘서점 vs 서점’ 공간적 무대를 유럽 대륙에서 아메리카 대륙으로, 시간적 무대를 20세기로 옮겨온다. 유럽과는 다른 문화 속에서 책을 유통하고 소비하는 미국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저자 미국 브랜다이스 대학교 사회학과 로라 J. 밀러 교수는 다양한 사례 연구와 현장 인터뷰를 통해 미국 출판 시장의 변모 과정을 깊이 있게 추적한다. 신문 가판대와 드러그스토어, 잡화점 등 개별적인 소매점에서 판매되던 책은 1960년대 ‘월든북스’ 같은 체인 서점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어 반스앤드노블사, 아마존으로 이어지는 체인 서점의 왕중왕 가리기 과정을 통해 미국에서도 경영학과 유통의 논리가 통하지 않는, 독특한 책의 상품성을 조명한다. 동네 독립서점들이 대기업 체인 서점과 맞서다 사라져가는 책 속 풍경은 결코 낯설지 않다.
세 권의 책이 겨냥하는 바는 조금씩 다르고, 서술 방법 또한 차이가 있다. 하지만 세 권 모두 책의 존재 가치를 새삼 돌아보게 하고 그것을 유통시키는 서점의 존재에 고마운 마음을 갖게 만든다는 점에서는 같다. 박윤규·이상훈 옮김.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