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1 보조금 대란’ 이후-끊이지 않는 보조금 논란 왜] ‘고객 뺏기’ 유인책

입력 2014-02-13 01:34

이동통신사들의 보조금 전쟁이 끝을 모르고 치닫고 있다. 정부의 감시와 제재에 아랑곳하지 않고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부으며 가입자 유치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소비자들은 비싼 단말기 가격을 감당하기 버거워 할 수 없이 이통사들의 이전투구의 장인 번호이동 시장으로 내몰리고 있다.

지난 연말 방송통신위원회는 과잉 보조금 경쟁을 벌인 이통사들에 1064억원에 달하는 사상 최대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하지만 이통사들은 그 후에도 보란 듯이 기습적인 보조금 소동을 벌였다. 고가 정책을 유지하던 ‘아이폰5s’마저 지난달 공짜폰 대열에 합류하더니, 지난 11일에는 출고가가 95만4000원인 삼성전자 ‘갤럭시S4 LTE-A’에 140여만원의 보조금이 책정됐다. 10∼11일 이틀간 싼 값에 스마트폰을 구매하려는 사람들이 밤새 대리점을 찾아다녔다. 2·11대란이 벌어진 것이다.

업계는 지난 주말부터 시장에 풀린 보조금이 1000억원을 넘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지난해 방통위가 3사에 부과한 과징금 총액과 비슷한 수준이다. 이통사들의 번호이동 실적을 살펴보면 3사는 이달 들어 시장 점유율을 사수하기 위해 돌아가면서 보조금을 뿌린 것으로 보인다. 지난 5일 SK텔레콤의 순증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6∼7일에는 KT, 8∼10일에는 LG유플러스의 순증이 두드러졌다. 보조금 대란이 벌어진 11일에는 다시 SK텔레콤이 5802건 순증했다. 업체가 보조금을 뿌릴 때마다 해당 업체의 번호이동 실적이 순증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업계 관계자는 12일 “한 업체의 경우 뺏긴 가입자를 되찾아 오기 위해 하루에만 800억원에 가까운 보조금을 투입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현재 SK텔레콤과 KT는 각각 시장 점유율 50%와 30%를 지켜내는 것을, LG유플러스는 20%를 돌파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포화 상태인 시장에서 이통사가 점유율을 늘리기 위해선 경쟁사의 가입자를 뺏어 오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소비자들은 단말기가 너무 비싸기 때문에 이통사의 점유율 싸움에 휘둘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스마트폰을 저렴하게 구입하려면 불법 보조금의 도움을 받는 것이 거의 유일한 방법이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제조사의 출고가는 비싸고, 기기변경에 대한 이통사의 자체 혜택은 미미한 탓이다. 보조금 대란을 틈타 번호이동을 할 경우 출고가가 100만원에 달하는 스마트폰을 공짜로 살 수 있다. 그러나 이통사의 장기가입고객 우대 혜택을 받아봤자 합법적인 보조금 액수인 27만원을 초과하는 할인은 기대할 수 없다. 소비자들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셈이다.

직장인 이민아(31·여)씨는 “90만원에 산 스마트폰을 다른 사람이 공짜로 사면 당연히 화가 나지 않겠느냐”면서 “단말기 가격이 전반적으로 내려가거나 투명한 가격 정책이 시행되지 않는다면 소비자들로선 보조금 대란을 오히려 기다릴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이통사들이 삼성전자 ‘갤럭시S5’, 애플 ‘아이폰6’ 등 신제품 출시를 앞두고 재고를 처분하는 상황에 대한 불만도 터져 나오고 있다. 대학생 노우진(24)씨는 “보조금이 ‘혜택’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소비자들을 더욱 ‘호갱님(어수룩한 고객)’으로 만드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면서 “최신형 스마트폰은 너무 비쌀 게 뻔하고 그나마 가장 최근에 나와 곧 구형이 될 모델을 싸게 사는 게 최선”이라고 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