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깜깜이 경찰… 응급실 취객 사고 막으랬더니 ‘30대 자살’ 신고 받고서야 알아
입력 2014-02-13 01:32
경찰이 술에 취한 사람들로 인해 발생하는 사고를 막겠다며 경찰관을 24시간 상주시키는 ‘주취자(酒醉者) 원스톱 응급의료센터’에서 주취자가 목을 매 자살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김용판 전 서울지방경찰청장이 의욕적으로 도입했던 제도지만 경찰은 사망 4시간 만에 다른 환자가 시신을 발견할 때까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주취자 응급의료센터 파견 경찰관의 복무 매뉴얼조차 갖춰져 있지 않았다.
지난 9일 오후 2시16분쯤 서울 동작구 보라매병원 응급실에서 진료받던 이모(37)씨가 화장실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이씨는 오전 8시쯤 서울 관악구 남부순환로변의 한 건물에 주취자가 있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관악경찰서 경찰관들에게 발견됐다. 구급차에 실려 오전 8시30분쯤 병원에 도착, 수액 링거를 맞던 이씨는 오전 10시26분 화장실로 가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화장실 문이 잠긴 채 기척이 없는 걸 이상하게 여긴 다른 환자가 병원에 알려 시신이 발견됐다.
이 병원은 국립중앙의료원 서울시립의료원과 함께 2012년 7월부터 주취자 원스톱 응급의료센터로 지정됐다. 당시 김 전 서울청장은 주취폭력 대응책의 하나로 이 제도를 도입했다. 3개 응급의료센터는 지난해까지 주취자 1만510명을 치료했고 보라매병원은 전체의 32.2%를 담당했다.
주취자 원스톱 응급의료센터에는 가스총과 호신장구를 착용한 제복 경찰이 24시간 상주해 술에 취한 이들을 관리한다. 주취자가 소란을 피워 진료를 방해하거나 환자들이 불안해하지 않도록 조치하는 역할도 담당한다. 자살 사건이 발생한 보라매병원에는 4개조로 편성된 경찰관들이 24시간 돌아가며 파견근무를 하고 있다. 그러나 이날 파견된 경찰은 병원 측이 이씨 사망 신고를 할 때까지 그의 행방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지난해 12월 경찰·병원·서울시 관계자들이 가진 ‘주취자 원스톱 응급의료센터 운용회의’에서 경찰의 역할은 ‘주취자 발견 및 병원 이송’과 ‘(주취자가 응급실에 들어올 경우) 응급실 대기’ 등으로 명시됐다. 특히 병원들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경찰관이 주취자 인근에서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달라’고 요청했다. 이번 사고는 경찰이 병원 측의 요청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아 발생했다. 주취자가 들어올 경우 어떻게 대응하라는 복무규정조차 만들지 않았다.
이 병원에 경찰관을 파견하는 서울동작경찰서 관계자는 “이씨가 술에 취해 난동을 부리진 않아서 크게 관심을 쏟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박요진 기자 tru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