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빅토르 安에 열광, 우리 선수엔 까칠… 걱정됩니다” 선수 부모들 여론 이상기류에 속앓이

입력 2014-02-13 02:32

“시합 때 떨려서 생중계 안 보고 식탁에 엎드려 있었어요. 나중에 1500m 경기에서 서로 충돌했다는 얘기를 듣고 내가 얼마나….”

소치 동계올림픽 남자 쇼트트랙 이한빈 선수의 어머니 박옥분(53)씨는 지난 10일 1500m 경기에서 아들이 동료 신다운 선수와 충돌한 순간을 설명하다 말을 잇지 못했다. 당시 이 선수는 극적으로 구제돼 결승에 나섰지만 6위에 그쳤다. 박씨는 12일 “아들에게서 충돌 순간에 스케이트 날이 이상해졌다는 문자가 왔었다”며 “그래도 남은 계주 잘하면 된다면서 씩씩하게 굴더라”고 했다.

남자 쇼트트랙 선수들은 이처럼 불운을 삼키며 ‘파이팅’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이를 바라보는 여론의 시선이 심상치 않다. 안현수(러시아명 빅토르 안) 선수가 2011년 대표팀 내 파벌 문제 등으로 러시아에 귀화한 뒤 대한빙상경기연맹을 비난하는 여론이 형성되면서 “이번 올림픽에서 한국의 쇼트트랙 선수들이 노메달에 그쳐야 정신 차릴 것”이라는 식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한국 남자 쇼트트랙 국가대표 선수들은 이렇게 ‘까칠한’ 시선을 받으며 13일 1000m와 5000m 계주에 나선다. 가족들 심정은 어떨까.

박씨는 “현수가 러시아로 가기 전까지 한빈이와 같은 팀에서 운동했고 팀이 해단될 때 같이 아픔을 겪었다”며 “한빈이와 현수는 서로가 절실한 사이”라고 했다. 안현수와 이한빈은 성남시청 팀에서 같이 뛰며 룸메이트로 지냈다. 그는 “우리 선수끼리도 결승에서 경쟁하듯이 두 아이도 국적을 떠나 양보 없이 잘 뛰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박씨는 “충돌로 넘어졌다가 결국 결승 진출을 했다는 소식에 이 엄마는 지옥과 천당을 오갔다”며 “여러 말이 많은 걸 알지만 그래도 아들이 자랑스럽다. 남은 계주 잘 치러서 한국 쇼트트랙이 죽지 않았음을 보여주길 기도할 뿐”이라고 했다.

다른 쇼트트랙 선수의 가족 A씨는 익명을 요청하며 조심스럽게 인터뷰에 응했다. 혹시라도 선수들의 남은 경기에 지장이 있을까 염려해서다. 그만큼 쇼트트랙 선수들을 향한 시선에 가족들은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A씨는 “밴쿠버올림픽 때는 국민들이 오로지 한국팀을 응원했는데 현수가 러시아로 간 뒤로 의견이 갈리는 것 같다”며 “현수도 좋은 선수여서 충분히 아쉬워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안 선수에 대해 “현수는 상대 선수 스케이트 날 방향만 보고도 진로를 예측하는 세계 최고의 스케이터”라며 “아들이 현수 같은 전설적인 선수와 어깨를 나란히 하고 시합하는 것만으로도 기특하다”고 평가했다. 이어 “(안 선수 귀화의) 모든 문제는 어른들이 만들었지 아이들에게 문제가 있지는 않을 것”이라며 “현수를 동정하는 여론이 많지만 우리 아이들도 애정을 갖고 바라봐 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A씨는 선수들이 국내 여론에 크게 개의치 않고 좋은 성적을 거두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안 선수와 한국 대표팀 선수들도 현지에서 자주 만나며 원만하게 지내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많은 응원이 필요한 때에 국내 분위기가 이렇다 보니 아이들이 너무 안쓰럽다”며 “올림픽만 바라보고 10∼20년을 피땀 흘린 선수들의 마음을 헤아려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조성은 전수민 기자 jse13080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