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쿡기자] 친절하게 섬노예 단속날짜 SNS 고지… 네티즌 “우체통보다 못한 경찰” 분통

입력 2014-02-12 17:12


[친절한 쿡기자] 1. 최근 전남 신안군 ‘섬노예 사건’과 관련해 국민 여론이 들끓자 경찰청이 지난 7일 “책임을 통감한다”며 인권침해 여지가 있는 도서지역 염부 등 악덕업주를 단속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내놓았습니다. 섬노예 사건이 발생한 관할 전남지방경찰청은 무슨 속셈인지 이를 페이스북과 트위터 등을 통해 알렸습니다(사진). 친절하게도 ‘점검 기간은 2014년 2월 10∼21일까지 2주간입니다’라고 명시까지 했습니다.

하지만 여론은 차가웠습니다. “세상에 어느 국가기관이 단속 날짜를 알려주냐. 무능의 극치다”라는 격분의 목소리가 쏟아졌습니다. “(특정)지역의 문제가 아니고 이기적 인성의 문제”라며 “김복남 살인사건이라는 영화가 생각난다”고도 했습니다.

‘친절했던’ 경찰은 뒤늦게 “경고 차원에서 일부러 단속기간을 공개한 것이다”라고 했는데 네티즌은 “우체통 보다 못한 경찰”이라며 어이없어 합니다.

2. 사건의 당사자 K씨. 그가 전남 신안의 한 염전에서 1년 6개월 동안 사실상 감금된 채로 일을 하다 극적 탈출, ‘노예 노동’의 실상이 세상에 알려졌습니다. 시각장애인이었던 K씨는 노숙 생활을 하다가 카드빚을 졌고, 그 빚을 갚아준다는 직업소개소 사람의 꾐에 빠져 그곳까지 팔려 간거죠.

3. K씨는 이발 하러 나온 틈에 우체국에 가서 어머니에게 자신의 상황을 알리는 편지를 부쳤습니다. 이를 받은 어머니가 경찰에 신고해 풀려날 수 있었죠. 그 섬에도 경찰은 있었지만 K씨는 현지 경찰에 신고를 안 한거죠. 사건을 접수한 서울 구로서는 소금 소매상으로 위장해 잠입했다고 합니다.

4. 2010년 개봉된 영화 ‘김복남 살인 사건의 전말’에서 나오는 섬 무도. 한 폭의 그림 같은 아름답고 평화로운 섬입니다. 은행원 해원(지성원 분)은 어린 시절 이 무도를 떠나 거대 도시에서 영혼을 내려놓고 살아가는 비정규직 여성입니다. 영혼을 내려 놨으니 불의한 것에도 눈 딱 감아버리고 살아가죠. 강간 폭행 사건을 목격했음에도 외면해 버립니다.

이런 그녀가 스트레스를 떨치고자 어린 시절의 추억이 묻어있는 고향 무도로 향합니다. 그곳엔 소꿉친구 복남(서영희)이 있었죠.

5. 그런데 그 섬의 불편하고 섬뜩한 진실과 마주합니다. 복남은 남편의 폭력과 ‘뱃놈’들의 성적 학대에 시달립니다. 복남은 노예나 다름없었습니다. 복남의 어린 딸은 의붓아버지인 남편에게 성폭행을 당하죠. 마을 사람들은 이 모든 것에 침묵합니다. 이 영화에서도 경찰이 등장합니다.

6. 이문열 소설 ‘익명의 섬’에서도 폐쇄적 마을 사람들의 폭력성을 얘기합니다. 산맥에 갇혀 마을 사람들은 사적 비밀을 서로 지켜주면서 외부 사람을 밀어내는 양면적 얼굴을 보입니다. 임권택이 ‘안개마을’이라는 영화로 만들기도 했죠.

7. 섬은 지리적 특성상 육지에 비해 익명성 높아 시민감시가 느슨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만큼 인권 사각지대일 수 있다는 얘기죠. 따라서 공권력이 법과 인권을 우선하지 않고 ‘침묵의 카르텔’을 방치할 때 제2, 제3의 ‘섬 노예 사건’이 또 발생할 수 있습니다.

8. 이 때문인지 경찰청이 12일 지역 경찰이 노동 착취행위를 알고도 묵인하지 않았는지 감찰팀을 파견했다고 밝혔습니다.

9. 파출소 옆 우체통에 대고 신원(伸寃)해야 하는 K씨나 ‘김복남’ 같은 억울한 사람들이 다시는 없도록 공권력이 바로 서야겠습니다.

전정희 선임기자 jhje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