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풍향계-김계동] 북핵 외교적 가치 잃었다
입력 2014-02-13 01:37
“핵 이슈 제기보다 다른 분야를 전향적으로 발전시키는 방안도 고려해야”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 국제사회의 심각한 이슈로 등장한 것은 1993년 3월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겠다는 선언을 하면서부터이다. 따라서 북한 핵의 역사는 20년이 넘었고, 그동안 북한의 지도자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교체되었으며 우리 대통령은 다섯 명째 바뀌었다. 북한의 핵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수많은 회담이 개최되었고, 몇 차례에 걸친 합의서, 선언서, 성명서가 발표되었지만, 아직 해결은 요원해 보인다. 6자회담은 거의 5년 동안 개최되지 않고 있다. 어쩌면 북한의 핵문제는 국제사회가 해결을 포기한, 잊혀져 가는 이슈가 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북한은 다양한 목적으로 핵무기 개발을 시도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첫째, 경제난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을 무마하고 내부결속을 위한 정치적 목적이다. 둘째, 힘을 과시하여 주변국들의 위협을 막아내기 위한 군사안보적 목적이다. 셋째, 체제위기에 처하여 외부로부터 지원을 받기 위한 외교협상용이다. 북한은 이들 중에서 외교협상용에 가장 큰 무게를 두어 온 것으로 보인다. 만약 국내정치 또는 군사안보 목적으로 핵무기 개발을 시작했다면, 주변국들과 핵개발 중단 또는 포기를 위한 협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1993년 3월 시작된 제1차 핵위기부터 북한은 핵개발을 외교적 도구로 활용했음이 명백하다. 1990년부터 북한은 체제위기에 직면하게 되었고, 특히 경제난이 시작되면서 외부로부터 지원을 받기 위하여 핵카드를 활용하여 벼랑 끝 외교를 추진한 것이다. 1994년 10월 제네바 합의를 하여 1차 핵위기를 끝내면서 많은 것을 얻을 수가 있었다. 북한은 핵동결을 하는 대신 경수로 원자로 2기 건설과 매년 중유 50만t 등 에너지 지원을 받을 수 있었고,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추진할 수 있게 되었다. 북한이 핵무기 보유를 목표로 했다면, 이러한 협상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2002년 10월 제2차 핵위기가 시작되면서 북한의 핵전략은 한 단계 업그레이드되었다. 1차 핵위기와 달리 북한은 핵보유 선언을 하였고 핵실험까지 하였다. 그 이유는 다자협상이 진행되기 때문에 협상카드를 더 업그레이드시킬 필요성을 느꼈거나, 또는 실제로 핵무기를 보유하려는 의도, 둘 중의 하나이다.
그러나 강대국에 둘러싸인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한다는 것은 군사안보적 가치가 그리 높아 보이지 않는다. 북한의 대립 상대인 남한과 일본이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고 있으며,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면 중국이나 러시아와의 외교도 많은 제한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제2차 핵위기 이후 6자회담을 계속하며 다양한 합의나 선언을 도출한 것을 보면 북한은 핵무기를 외교적 협상도구로 사용할 의사가 있음이 분명하다.
최근 들어 북한은 유화적인 대남 및 대외정책을 추진하려 노력하고 있지만, 핵문제가 발목을 잡고 있다. 자존심 때문에 조건 없이 일방적으로 철폐하겠다고 할 수 없고, 주변국들이 다시 핵 이슈를 제기하며 심각한 모습을 보이면 좋겠는데, 그럴 조짐도 보이지 않는다. 핵무기도 보유하면서 핵을 수단으로 한 외교협상력도 높이면 좋은데 그것은 거의 불가능해졌다. 특히 북한 핵무기의 외교적 가치가 많이 상실된 느낌이다. 심지어 주변국들은 북한핵에 대한 피로감에 젖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상황은 북한에게 큰 딜레마이다. 핵문제를 일단락지어야 새로운 환경에서 대외정책을 추진할 수 있는데, 그 묘안을 찾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우리 정부도 이명박정부 이래 북한의 비핵화를 대화와 협상의 가장 중요한 조건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반드시 그럴 필요가 있는지 신중하게 고려할 필요가 있다.
해결되기 어렵고 잊혀져 가는 이슈를 우리만 계속 물고 늘어지기보다는, 다른 관계를 전향적으로 발전시켜 북한의 핵문제가 저절로 해결되는 방안도 고려해 보는 것이 바람직하다. 시대와 상황이 바뀌면 거기에 맞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김계동(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