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설이 빚은 설국, 느낌표가 흩날리네… ‘한국의 그랜드캐니언’ 울진 불영계곡
입력 2014-02-13 01:35
‘등허리 긁어 손 안 닿은 곳’이 경북 울진이라는 말이 있다. 그만큼 심산유곡이라는 뜻이다. 오지 중의 오지로 꼽히는 울진으로 가는 길은 세 갈래뿐이다. 강릉이나 포항에서 7번 국도를 타고 쪽빛 바다를 따라 달리는 길이 첫 번째다.
그러나 내륙에서 울진으로 곧바로 가려면 영양에서 ‘한국의 차마고도’로 불리는 구슬령 고갯길을 넘거나, 봉화에서 ‘한국의 그랜드캐니언’으로 불리는 불영계곡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36번 국도를 타야 한다. 그 중에서도 불영계곡은 경북 동해안에 내린 폭설로 오랜만에 그림 같은 설경을 연출해 이번 주말 드라이브 코스로 적당하다.
봉화에서 울진 경계를 지나 태백산맥 지맥을 넘으면 통고산 등산로 입구에 위치한 통고산자연휴양림이 눈을 흠뻑 뒤집어 쓴 채 오들오들 떨고 있다. 통고산은 불영계곡을 흐르는 광천의 최상류 지역으로 고대국가인 실직국의 안일왕이 다른 부족에게 쫓겨 이 산을 넘을 때 재가 너무 높아 통곡하였다 하여 통곡산으로 부르다 통고산(通高山)으로 굳어졌다.
통고산자연휴양림 입구에서 3.5㎞를 더 달리면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와 울진으로 가는 삼거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까지는 절경의 연속이다.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로 가는 917번 지방도로는 바닥에 쌓여 다져진 눈이 스키장의 슬로프를 방불케 한다. 제설차가 길섶으로 밀어낸 눈은 터널을 이루고, 계곡과 산에 뿌리를 내린 금강송은 눈 무게를 이기지 못해 부러지거나 쓰러져 안타까움을 더한다.
목질이 금강석처럼 단단한 금강송의 본래 이름은 황장목(黃腸木). 속이 노란 황장목은 표피가 붉어서 적송, 줄기가 매끈하게 뻗었다고 해서 미인송으로도 불린다. 금강송은 예로부터 궁궐의 기둥이나 왕실의 관으로 쓰인 귀한 소나무이지만 일제의 대대적 벌목과 개발로 백두대간 주변의 금강송은 멸종되다시피 했다.
울진 소광리의 금강송 군락지가 온전하게 보존될 수 있었던 까닭은 오지 중의 오지였기 때문이다. 조선 숙종 6년에 황장목을 보호하기 위해 입산이 금지됐던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는 1959년 육종림으로 지정된 후 민간인의 출입이 오랫동안 금지됐다 지금은 사전에 출입허가를 받은 탐방객에 한해 개방된다.
소광리 금강송 군락지 면적은 여의도 7배가 넘는 2274㏊. 삿갓재와 백병산 기슭을 따라 200세를 훌쩍 넘긴 노송 8만여 그루가 하얀 눈과 푸른 하늘을 떠받치고 있다. 이곳에서 가장 나이 많은 금강송은 520세. 금강송전시실 앞에 뿌리를 내린 금강송은 숲의 역사를 고스란히 지켜본 노송으로 어른 두 명이 팔을 벌려 껴안아도 손이 닿지 않을 정도로 굵다.
서면 소재지로 들어서면 가도 가도 끝이 없는 깊은 임도가 나온다. 천축산과 통고산의 8부 능선까지 오르는 임도는 왼쪽으로 왕피천, 오른쪽으로 불영계곡을 놓고 그 중간쯤을 아슬아슬 달린다. 왕피천유역 생태경관보존지역의 생태탐방로이기도 한 임도는 박달재를 넘어 길이 끝나는 왕피천 속사마을까지는 약 16㎞. 울진이 꼭꼭 숨겨놓은 비경으로 설경까지 더해져 감탄사를 연발하게 한다.
서면 면사무소를 지나면 남녀가 포옹하는 형상의 사랑바위가 천길만길 낭떠러지에서 눈사람을 연출하고 있다. 옛날에 벼랑에서 약초를 채취하던 오라비가 실족사하자 사흘 밤낮을 통곡하던 누이가 절벽 아래로 몸을 던져 오누이가 바위로 변했다는 애절한 사연이 전해온다. 이때 흘린 피가 소나무에 스며들어 울진의 금강송이 봉화나 삼척의 금강송보다 더 붉어 보인다고.
사랑바위 옆에 위치한 사랑바위휴게소 뒤편 절벽은 금강송 가지를 액자 삼은 불영계곡 설경이 수묵화처럼 보이는 전망대 역할을 한다. 오누이의 피처럼 붉은 아름드리 금강송과 기하학적인 곡선을 그리는 나뭇가지 사이로 보이는 눈 덮인 계곡과 마을이 솜이불을 덮은 것처럼 포근하다.
불영계곡은 불영사 입구에서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눈 덮인 불영계곡이 S자를 그리는 풍경을 한눈에 보려면 도로변에 위치한 선유정에 올라야 한다. 선유정은 인근 불영정과 함께 36번 국도를 완공한 후 만든 정자. 시멘트로 만들어져 운치는 덜하지만 이층 누각에 오르면 깊은 협곡과 하얀 도화지에 연필로 스케치를 한 듯한 불영계곡의 절경이 파노라마로 펼쳐진다.
봉화와 울진을 연결하는 불영계곡에 언제부터 길이 생겼는지는 모른다. 여느 길의 역사와 마찬가지로 계곡을 따라가는 오솔길은 바지게꾼을 비롯한 장사꾼과 나그네들의 발길이 더해져 점점 넓어졌다. 1960년대에는 버스가 다닐 정도의 비포장길이 건설됐다. 1982년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의 지시로 봉화 현동과 울진을 잇는 36번 도로가 개설되면서 오지 협곡의 비밀스러움은 사라지고 말았다.
깊은 계곡을 품은 험한 산자락에 길을 놓는 일은 난공사 중의 난공사였다. 2년이 넘는 공사기간 동안 연인원 50만명이 동원됐고, 도로를 닦는 데 동원됐던 군인들이 목숨을 잃기도 했다. 그래서일까. 불영계곡이 시작되는 도로변에 수통을 차고 바위를 옮기는 군인들의 모습을 담은 ‘울진·현동도로준공기념탑’이 전투기념비처럼 비장해 보인다.
길은 새 길에 역할을 넘겨주고 물러나야하는 운명을 타고 났다. 오솔길에서 신작로, 신작로에서 포장도로로 진화한 36번 국도는 2017년 완공을 목표로 건설 중인 새로운 도로에 자리를 넘겨줄 채비를 하고 있다. 터널과 교량으로 이루어진 새 도로가 완공되는 날에 ‘등허리 긁어 손 안 닿은 곳이 울진’이라는 말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되리라.
울진=글·사진 박강섭 관광전문기자 kspar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