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부, 연장근로 한도 ‘법대로’… 기업주들 범죄자 될 판

입력 2014-02-12 01:34

고용노동부가 연장근로 한도를 주당 68시간으로 정한 기존 행정해석을 포기할 방침을 내비치면서 일선 사업주들이 대거 범죄자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 대법원이 근로시간 한도를 주당 52시간으로 제한할 가능성이 커지면서 정부가 그에 맞춰 법을 집행하겠다는 입장을 밝혔기 때문이다.

노동부 고위 관계자는 11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주당 총 근로시간 한도를 52시간으로 제한하는 대법원 판례가 나올 경우 그에 따라 법을 집행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여태껏 정부는 연장근로 한도에 휴일근로는 포함되지 않는다는 행정해석을 고수했다. 이에 따라 일선 기업체들은 법정 근로시간인 주 40시간에 연장근로 한도(12시간)와 휴일근로(16시간)를 더한 68시간을 연장근로 한도로 적용해 왔다.

대법원은 늦어도 이달 말까지는 연장근로 한도에 대한 판결을 내놓을 것으로 보인다. 하급심은 물론 법조계와 학계가 연장근로 한도에 휴일근로가 포함된다는 견해를 밝히고 있어 대법원도 연장근로 한도를 52시간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

이렇게 되면 노동부 지침에 따라 52시간을 초과해 연장근로를 시켰던 사업주들은 졸지에 위법 상태에 놓이게 된다. 근로기준법은 연장근로 한도를 준수하지 않을 경우 2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특히 장시간 근로가 관행이 된 자동차 제조업 등 일부 업종은 심각한 타격을 입을 전망이다. 지난해 상반기 노동부가 자동차 제조업 중심의 사업장 314곳을 감독한 결과 86.6%(272곳)가 주당 52시간을 넘겨 일을 시키는 것으로 조사됐다. 대법원이 연장근로 한도를 52시간으로 제한할 경우 사업체 10곳 중 9곳 가까이가 고소·고발만 있으면 언제든 처벌받을 수 있는 상황인 셈이다. 노동부는 이미 비공식적으로 검찰과 협의를 통해 대법원 판결 이후 고소·고발이 제기되면 대법원 판례를 기준으로 사건을 처리한다는 방침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노동부 관계자는 “현재도 68시간의 한도를 초과한 기업은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대법원 판결이 52시간으로 나오면 그에 맞춰 적용하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이런 강수를 두는 것은 다분히 국회를 압박하는 측면이 강하다. 정부는 지난해 10월 새누리당과 연장근로를 포함한 주당 근로시간 한도를 52시간으로 낮추는 내용의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합의했다. 다만 산업현장의 혼란을 우려해 상시 근로자 수를 기준으로 규모별로 유예기간을 뒀다. 그러나 산업계와 노동계의 반발로 번번이 입법이 무산되자 정부가 국회를 압박하고 나선 것이다. 노동계는 유예기간 없이 즉각적인 시행을 요구하고 있지만 산업계는 인건비 상승으로 인한 경영환경 악화를 이유로 법 개정에 난색을 표하고 있다. 양측의 거센 반발 속에 법안이 표류하면서 정부가 국회의 결단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그러나 국회를 겨냥한 정부의 노림수에 정작 가슴을 졸이는 것은 재계다. 재계 관계자는 “정부 지침을 충실히 따랐을 뿐인데 하루아침에 범법자 신세로 전락하게 되는 셈”이라며 억울함을 나타냈다. 정부가 대법원 판례에 따라 지침을 바꿔 연장근로 한도 초과에 대한 처벌 기준을 바꾸게 된다 해도 산업계의 현실을 반영해 일정 정도의 유예기간을 부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선정수 기자 j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