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글속 세상] 달구고 두드리고 전통 방짜유기 맥 잇기 외길 70년… 이봉주옹

입력 2014-02-12 02:31


“정신들 똑바로 차리라우.”

어슴푸레한 여명에 사물이 겨우 분간되는 지난 10일 새벽 4시 반. 경북 문경시 가은읍 외곽의 공방엔 벌써 불이 환하다.

카랑카랑한 평안도 사투리가 불빛에 섞여 공장 밖으로 새어나온다. 1300도가 넘는 펄펄 끓는 쇳물을 둥그런 물판에 붓자 공방 한켠은 금세 수증기로 가득하다. 다른 쪽에선 새빨갛게 달궈진 둥근 쇠판을 프레스 기계로 눌러 넓적하게 만드는 작업도 한창이다. 다양한 형태의 놋쇠그릇을 만드는 공방 안엔 화염과 뜨거운 열기, 기계 파열음이 온통 뒤섞여 있다. 잠시라도 한눈을 팔다가는 어디서 사고가 날지 알 수 없는 긴장이 흐른다.

88세의 나이가 무색한 원대장(유기장 우두머리) 이봉주옹이 이 모든 공정을 진두지휘한다. 방짜유기 명예보유자로 중요무형문화재 77호인 그는 유기장 기능보유자 3인 가운데 유일하게 방짜유기를 만들고 있다. 얼마 전엔 후배들을 위해 중요무형문화재 직함까지 기꺼이 내려놓았다. 그는 “일을 계속하니 늙지 않는 것 같다”면서 “놋그릇 만드는 일 외엔 특별히 취미도 없다”고 말한다.

유기는 구리에 주석 등을 섞은 놋쇠로 만든 그릇을 지칭한다. 제작 기법에 따라 방짜와 주물, 이 둘을 혼합한 반방짜로 나뉜다. 방짜는 평북 정주군 납청(納淸)이, 주물은 경기도 안성, 반방짜는 전남 순천이 각각 대표 산지로 꼽힌다. 큰 그릇을 주로 만들어 납청량대방짜(納淸良大方字)로도 불리는 정주는 이옹의 고향이다.

방짜유기는 구리와 주석을 78%와 22%의 비율로 섞은 다음 여러 명이 수천 번 메질을 해 만든다. 표면이 매끄러운 주물 제품과 달리 방짜유기는 메 자국이 은은하게 남아 있어 수공예의 멋이 그대로 드러나 인기가 높다. 한때 값싼 양은이나 플라스틱 제품, 스테인리스스틸 식기가 대량으로 보급되면서 위기를 맞았던 유기 제품은 드라마 ‘대장금’의 한류 열풍과 함께 독성분별과 항·멸균 효과, 보온성이 뛰어난 ‘웰빙 그릇’으로 알려지면서 다시 각광받게 됐다. 특히 2002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했을 당시 청와대에서 만찬용 식기로 사용했을 정도로 귀한 그릇으로 자리매김했다.

식기 외에도 이곳에서 만드는 징과 꽹과리, 좌종 등은 청명한 소리에 울림이 깊어 김덕수사물놀이패를 비롯한 국악 연주가들에게도 꾸준한 사랑을 받아 왔다.

원래 방짜유기는 원대장 등 11명이 한 조를 이뤄 만들었지만 최근엔 각종 도구의 발달과 기계화 덕에 적은 인원으로도 작업이 가능하다. 이옹이 2004년 설립한 문경방짜유기촌에선 조교인 아들 이형근(56)씨를 비롯해 이수자 5명이 납청량대의 맥을 이어가고 있다. 은행원인 손자 이지호(29)씨도 가업을 잇기 위해 조만간 합류할 예정이다.

뜨거운 불 앞에서 구슬땀을 흘리는 제자들을 흐뭇한 표정으로 지켜보던 이옹은 “이제 고향인 납청에 유기 공방을 세우는 일은 포기했다”며 말끝을 흐렸다. 하지만 88세의 ‘청년 장인’은 “새로운 기법을 통해 현대화된 실용적인 유기를 개발하면서 동시에 납청방짜의 원형 보존에 마지막 힘을 쏟겠다”며 식지 않은 열정에 불을 지피고 있다.

문경=사진·글 곽경근 선임기자 kkkwa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