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人터뷰] 이토 마코토 변호사 “평화헌법 개정은 일본의 장점을 버리는 행위”
입력 2014-02-12 01:33
“지고 있는 야구경기의 9회 말 투아웃 상황.”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2012년 12월 다시 등판한 이후 상황에 대한 일본 시민사회의 우려 섞인 표현이다. 아베 총리가 의회 내 집권 자민당의 수적 우세를 앞세워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일본국헌법 개정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걸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일본국헌법은 백척간두의 위기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에 지난 30여년 동안 일본국헌법의 가치를 전파하고 지키기 위해 몸바쳐온 이토 마코토(伊藤眞·56) 변호사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인터뷰는 지난 5일 오후 국제전화를 통해 1시간가량 이뤄졌다.
아베 총리를 비롯한 보수우파들의 공세가 격심해지고 있는 만큼 일본 시민사회 역시 헌법 9조(키워드 참고)를 비롯한 평화헌법을 지키기 위한 노력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토 변호사도 그 중심인물 중 한 사람이다. 그는 평화헌법의 가치를 전파하기 위해 20년째 일본 전국을 돌면서 강연을 해오고 있다. 여기에 주부들 중심의 평화지킴이 시민운동단체인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워커스 포 피스·WFP)’은 좀 더 많은 일본 시민들에게 평화헌법의 가치를 알리기 위해 지난해 4월 이토 변호사의 헌법강연을 수록한 DVD를 제작·배포하고 있다(workers4peace.org).
WFP는 평화헌법을 지키자면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시민사회와의 연대도 절실하다고 판단해 우선 이토 변호사 헌법강연 DVD의 한국어판을 제작했다. 한국어판 제작기념집회는 오는 14일 도쿄에서 열릴 예정인데 이번 인터뷰는 그에 앞서 평화헌법 저간의 경위와 평화헌법 개정 반대운동의 향후 전망에 대해 주로 이토 변호사에게 들어봤다.
헌법은 국가권력이 지켜야 하는 것
-헌법 강연에서 핵심적으로 다루는 내용은 무엇인가.
“우선 헌법과 법률의 차이부터 거론하자. 흔히 헌법은법률 중 최상위의 대장 법률로 생각하기 쉽지만 법률과 헌법은 그 지향하는 바가 본질적으로 다르다. 법률은 국가(입법기관)가 만들어서 국민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 초점인 반면 헌법은 국민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국가나 권력을 제한하고 묶어두기 위한 것이다. 법률은 국가가 국민을 향해 ‘지켜라’고 말하지만 헌법은 국민이 국가를 향해 ‘지켜라’고 말하는 구조다.”
-‘입헌주의’의 의미도 헌법과 관련된 것인가.
“그렇다. 내가 강연에서 두 번째로 강조하는 내용인데, 국가의 권력행사를 헌법에 의해 제한하는 것을 입헌주의라고 부른다. 오늘날 민주주의 국가 체제 하에서 국민이 뽑은 정치권력, 민주주의에 바탕을 둔 정치라고 해도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개인을 존중하지 않는 사태가 빚어진다면 당연히 제동을 걸어야 한다. 헌법은 국민이 지키지 않으면 안 되는 가장 기본적인 법률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 개개인의 인권을 지키기 위해 국가권력이 반드시 지켜야 할 법이다.”
-입헌주의 입장에서 일본국헌법의 특징은 무엇인가.
“오늘날 대부분 국가는 입헌주의를 중시한다.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을 존중하는 헌법 체계를 운용한다는 얘기인데 이와 관련해 일본국헌법은 헌법 9조에서 명기하고 있는 철저한 비폭력 평화주의를 중심적 가치로 선포하고 있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즉 전쟁 포기, 군사력 불보유와 교전권 부인을 강조하고 있는 만큼 만일 일본 정부와 다양한 정치권력들이 이를 훼손하려고 한다면 이 조항에 근거해서 그들의 권력을 제약해야 할 수 있는 근거를 제공한다.”
입헌주의 무시한 자민당 헌법안
-자민당이 헌법 개정을 외치는 이유도 입헌주의를 의식한 것인가.
“사실 자민당 헌법 개정 초안은 입헌주의의 본질을 근본적으로 무시하고 있다. 헌법을 지켜야 하는 것은 국가권력이어야 하는데 자민당 안은 거꾸로 국민의 의무조항을 많이 만들었다.”
-일본의 보수우파는 일본국헌법이 공포될 때부터 개정을 주장해 왔는데 최근 들어 개정 주장이 더 구체적으로 나온 이유는 무엇인가.
“자민당은 1955년 당이 출범할 때부터 헌법 개정을 당의 제1목표로 삼아 왔을 정도로 그들에게 있어서 헌법 개정 주장은 마치 당의 DNA와 같은 것이다. 그런데도 특히 최근 들어 부쩍 헌법 개정이 거론되는 것은 우선 탈냉전 이후부터 미국이 일본에 대한 군사적 공헌을 강하게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중국의 존재감이 커지고 있는 상황을 위기적인 변화라고 부추기면서 보수정치가들이 이를 적절히 이용하고 있다는 점도 무시하기 어렵다.”
-자민당 안과 평화헌법의 차이는.
“크게 네 가지로 요약된다. 우선 자민당 안은 평화헌법의 입헌주의를 대부분 부정하고 있다. 둘째로 국방군 설치 및 교전권을 허용하는 등 평화헌법 9조의 비폭력 평화주의를 부인한다. 셋째로 천황을 원수(元帥)로 격상시킴으로써 국민주권의 주장을 후퇴시켰다. 넷째, 인권보호 문제가 사실상 형해화되고 있다.”
-인권보호 형해화란 무슨 뜻인가.
“예컨대 자민당 헌법안 12조 마지막 부분은 ‘국민의 권리와 지위는 항상 공익과 공공의 질서에 반해서는 안 된다’라고 돼 있다. 이는 대단히 위태로운 표현이다. ‘공익과 공공의 질서’는 국가가 법률로 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국가가 법률로서 질서유지의 기준을 강화하면 집회, 결사 등의 자유의 훼손은 불을 보듯 빤하다. 의무규정이 많은 헌법의 한계가 바로 이렇게 드러나는 것이다. 인권보호의 형해화란 인권보호가 겉으로는 빠짐없이 규정돼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구멍투성이의 상황으로 변질될 수 있다는 뜻이다.”
보통국가라는 일반론의 함정
-헌법 개정 문제를 둘러싸고 몇 가지 의문이 있다. 우선 9조의 개정으로 일본은 전쟁이 가능한 나라가 된다는 것이 시민사회의 크나큰 우려인데 헌법이 개정되면 아베 정권은 정말로 전쟁을 벌일 것이라고 보나.
“과거와 같은 일본 독단의 침략전쟁이 일어날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핵심은 일본이 미국의 요청에 의해 전쟁에 휩쓸릴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이뿐 아니라 역내의 중국 북한 등과의 분쟁에 따른 충돌 위험성이 커진다는 점도 걱정되는 대목이다.”
-일본의 보수 정치가들은 ‘일본도 보통국가를 지향해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오늘날의 보통국가가 개개인이 존중되고 입헌주의에 입각한 법체계가 작동되는 것을 의미한다면 나는 당연히 찬성이다. 하지만 평화헌법이 말하는 가치는 전쟁을 포기하고 군대를 갖지 않는다는 데 초점이 있으니 적어도 평화문제에 있어서만큼은 기존의 다른 보통국가의 노선을 따르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보통국가가 군대를 보유하고 교전권을 행사하는 것이라면 그와 같은 보통국가는 추구하지 않아도 된다고 본다. 아니 추구해서는 안 된다. 평화헌법이 주장하는 항구적인 평화주의는 전후 일본만이 간직하게 된 일본 고유의 브랜드(Japan Brand)다. 그것은 일본산 쌀이 맛있다거나 전기제품이 쓰기 좋다는 호평처럼 일본의 장점이자 강점이었다. 이를 바꾼다는 것은 전후 70년 가까이 지켜온 일본 고유의 장점을 버리는 것과 다르지 않다. 보통국가라는 일반론의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헌법 개정 막자면 시민연대 절실
-헌법 개정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들은 행여 있을 수 있는 역내의 군사사태에 대응하기 위해서도 헌법 9조 개정이 필요하다는 당위론을 편다. 이에 대한 반론은.
“개인적으로는 자위대의 존재를 위헌으로 보지만 자위대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이들은 긴급사태를 염두에 두고 없으면 안된다는 논리를 폈다. 지금까지 그들이 주장한 대로 자위대가 있기 때문에 전수(專守)방어가 가능했던 것 아닌가. 그게 아니었다면 자위대는 대체 누구를 위한 것이었나 등등을 내세워 비판한다. 이미 전수방위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새삼 교전권 등이 필요할 까닭이 뭐냐고 말할 것이다.”
-미국의 존 다워 MIT대학 교수는 영화 ‘일본국헌법’에서 “일본이 이웃나라에 과거사에 대한 사죄를 주저하는 것은 분명 문제지만 가장 확실한 일본의 사죄는 헌법 9조 정신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금 그 9조 정신이 위태롭게 됐다.
“그렇다. 실제로 거센 압박이 이어지고 있으나 결국은 시민들이 평화헌법의 강점을 확실히 깨닫고 힘을 모아 저지하는 수밖에 없다. 평화헌법에 대해 시민들 모두가 좀 더 인식을 새롭게 하면서 지켜갈 수 있는 계기를 어떻게 하든 마련해야 한다고 본다. 특히 이 문제는 단지 일본 국내만의 문제가 아니라 이웃나라 시민, 평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모두의 관심사라고 생각한다.”
헌법 9조는 국제협약
-이번에 한국어판 DVD를 제작한 배경도 그 때문인가.
“평화헌법은 일본만의 문제로 생각하기 쉽지만 실제로 헌법 9조를 비롯한 내용은 일본이 패전 후 국제사회에 일원으로서 인정받기 위해 마련한 국제협약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따라서 이 평화헌법을 지키는 것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것을 지키느냐 못 지키느냐 하는 문제는 일본이 국제사회와의 신뢰관계를 이루는 근본이기에 일본의 시민사회는 이를 지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마찬가지로 주변 국가들 역시 국제협약으로서의 일본국헌법을 지키는 데 힘을 모아야 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시민사회가 일본의 헌법 개정에 대해 거론하는 것은 내정간섭이 아닌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본다. 오히려 한국을 비롯한 주변국들은 ‘약속을 지켜라’고 요청해야 한다. 평화헌법에 담긴 생각은 일본만이 추구해야 할 가치가 아니다. 역내는 물론 동아시아, 나아가서는 세계로 펼쳐져야 할 인류의 주장이 돼야 한다. 평화주의에 입각해 역내에서 군축을 통해 긴장을 완화하고 핵무장을 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다.”
-일본의 평화헌법이 역내의 중요한 가이드로서 작동하지 못한 원초적 배경도 있지 않은가.
“과거 전쟁에 대한 일본의 분명한 반성이 결여돼 있다는 점이 문제일 것이다. 과거 침략에 대한 인정, 사죄와 배상 등이 순전하게 이뤄졌더라면 평화헌법의 가치를 공유하기가 수월했을 텐데 그렇지 못했던 점이 아쉽다. 그럼에도 평화헌법은 여전히 일본과 국제사회가 맺은 ‘공약’이기에 지켜져야 한다.”
-특히 아베정권 이후 한·일 관계는 악화일로가 아닌가.
“정치·외교적으로 양국관계가 악화되고 흔들릴 때야말로 더더욱 민간 차원의 교류와 협력이 중요하다. 평화헌법을 지키기 위한 한·일 연대야말로 그 무엇보다 필요한 이유가 아닐까 싶다.” 헌법지킴이의 주장은 거침이 없었다. 평화헌법 개정을 막을 수 있는 시민사회의 관심이 그만큼 절실하다는 얘기다.
Key Word-일본국헌법 9조
일본국헌법 9조는 1항에서 ‘전쟁포기’를 선언하고, 2항에서는 1항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군사력 불보유와 교전권 부인 내용을 담고 있다. 이는 일본국헌법이 철저한 항구적 비폭력 평화주의를 추구하는 ‘평화헌법’으로 불리는 구체적인 이유이자 일본의 비무장에 확실한 논리적 근거를 이루고 있다.
이토 마코토 변호사는
도쿄대 법학부 재학 중인 1981년 사법시험에 합격한 이래 일본국헌법의 의미, 즉 평화헌법으로서의 가치를 학생들을 비롯해 일반 시민들에게 전파하는 것을 일생일대의 사업으로 삼아 왔다. 대학 재학 시절 일본국헌법의 비폭력 평화주의에 크게 매료돼 그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1995년부터는 법률전문학원 이토학원(伊藤塾)을 설립해 일본 사회의 엘리트로 성장할 예비 공무원·법조인들에게 일본국헌법의 특징을 가르치는 한편 전국 각지를 돌면서 ‘이토 변호사의 헌법강연회’를 연 100∼150회 정도 실시해 오고 있다. 강연에 몰두하기 위해 이토 변호사는 95년 5월부터 2007년 12월까지 변호사를 휴업했었다. 지금까지 그의 헌법 강연을 들은 사람들은 대략 10만명에 이른다.
이토 변호사는 강연 요청이 오면 집회인원이 많든 적든 어디든지 달려가서 평화헌법 전도사로서 역할을 아끼지 않았다. 사법시험 합격 후 판사·검사의 길도 있었을 텐데 왜 변호사의 길을 선택했느냐는 질문에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평화헌법의 정신을 알려주기 위해서는 변호사가 더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고 답한다. 이와 같은 그의 한길 인생 덕분에 별명도 평화헌법과 직결돼 있다. 예컨대 일본에서 ‘헌법 전도사’라고 하면 바로 이토 변호사를 지칭하는 말이 됐으며, 다큐멘터리 영화 ‘일본국헌법’의 장 융커만 감독은 이토 변호사에 대해 ‘미스터 헌법’이라고 부르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도쿄대 법학부 졸업 △변호사 △이토학원 원장 △‘1인1표실현 국민회의’ 발기인 △저서로 ‘헌법의 힘’ ‘왜 지금 개헌인가’ ‘중고생을 위한 헌법교실’ 등
조용래 수석논설위원 choyr@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