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흥우] 戰車의 위기
입력 2014-02-11 01:33
제1차 세계대전은 진지를 구축하고 피아(彼我)가 대치하는 참호전으로 전개됐다. 양측이 1㎞를 전진하려면 엄청난 인명 손실을 감수해야 했다. 오랫동안 승기를 잡은 측 없이 양측의 인명 피해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 참호전의 참상을 소설 ‘서부전선 이상없다’는 실감나게 그리고 있다.
영국은 이러한 교착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비밀리에 암호명 ‘탱크’로 명명된 신무기 개발에 나선다. 현대적 개념의 첫 전차 마크(MARK)-1은 이렇게 탄생했다. 이후 암호명을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전차는 탱크로 불리게 된다. 실전에 배치된 마크-1 전차를 처음 본 독일군은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한다. 최고 시속 6㎞에 항속거리는 20㎞에 불과했지만 총탄세례에도 끄덕 없는 전차는 독일군에게 괴물이나 다름없었다.
전차는 제2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지상전의 왕자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한다. 독일군이 타이거 전차를 앞세운 전격작전으로 프랑스가 자랑하는 마지노선을 순식간에 돌파하자 연합군은 기동성에 화력까지 갖춘 기갑부대의 위력에 경악했다. 연합군도 뒤늦게 전차 개발과 개량에 박차를 가해 2차대전 기간 미국과 영국이 각각 2만대 이상, 소련은 10만대 이상의 전차를 생산했다고 한다. 6·25전쟁 초기 국군이 전차로 무장한 인민군에게 속절없이 무너진 것을 보더라도 지상전에서 전차가 차지하는 비중을 짐작할 수 있다. 전차는 우리 육군의 핵심 전력이고, 정부가 막대한 예산을 들여 전차 개발을 계속하는 이유도 북한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서다.
그런 전차의 위상이 최근 크게 흔들리고 있다. 첨단기술 발달로 신무기가 속속 등장하면서 전차가 애물단지가 되고 있다고 한다. 미국 국방부는 드론(무인공격기) 등 신무기 구매를 늘리는 대신 전차와 장갑차 구입을 줄이고 있다. 전투력을 높이는 데 전차에 비해 드론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게 미 육군의 판단이다. 이로 인해 전차와 장갑차 제조 업체들은 직원을 대폭 줄이는 등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는 전했다.
하지만 전차시대가 그리 쉽게 종언을 고하지는 않을 듯하다. 영국을 비롯한 일부 국가들은 눈은 물론 적외선 망원경으로도 볼 수 없는 ‘투명전차’를 개발하고 있다. 영국 과학 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는 가시광선의 모든 파장과 적외선을 피해 가는 메타물질을 이용한 투명전차의 실용화가 20여년 후면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투명전차가 실용화되면 얼마나 가공할 무기가 될지 소름끼치는 소식이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