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김석우] 일본의 불행
입력 2014-02-11 01:33
“역사를 사실대로 마주할 용기가 없는 민족은 국제사회의 외톨이가 될 것”
일본은 참 이상한 나라다. 아베의 야스쿠니 신사(靖國神社) 참배를 지켜보면서 느낀 감정이다.
일본의 전쟁신들을 추모하는 시설을 총리가 참배하는 것은 국민교육의 의미가 있다. 문제는 이 시설에 도쿄 국제전범재판에서 처단된 A급 전범 14명의 위패를 1978년 슬그머니 옮겨놓은 데 있다.
마치 독일의 국립묘지에 히틀러나 괴링, 헤스를 기리는 것과 같다. 독일의 실제 모습은 전혀 다르다.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일인 1월 27일 아우슈비츠 수용소의 생존자를 베를린 국회 의사당에 초청하여 기념연설을 들었다. 가우크 대통령, 메르켈 총리가 맨 앞자리에서 경청하였다. 1970년 브란트 총리의 폴란드 방문 시 유대인 강제 수용소의 희생자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은 사진이 전 세계를 감동시켰다. 그러한 감동을 주지 못했다면 1990년 독일은 통일을 이룰 수 없었다.
왜 일본은 독일인의 대범함을 이해하지 못하는가. 일본을 여행하면 근면하고, 질서 잘 지키고, 친절한 일본인들에게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다. 2011년 3월 후쿠시마 쓰나미의 재해 현장에서도 일본 시민들의 질서의식에 전 세계가 전율을 느낄 정도로 감동했다. 그 일본이 대외적으로 야만처럼 보일 때 그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태평양전쟁 당시 군대에 성적 노예로 조선의 처녀들을 강제로 연행했던 사실 자체를 부인하려 한다. 역사를 사실대로 마주할 용기가 없는 것이다. 잘못한 과거에 대해 속죄할 수 있는 용기가 있어야 큰 민족이 될 수 있을 텐데….
본래 중국문화권의 변방에 있던 일본이 대항해 시대 이후 중국을 앞지른 유럽의 최첨단문명을 가장 먼저 받아들일 수 있었다. 1868년 메이지 유신(明治維新)을 통해 비유럽권에서 유일하게 산업근대화에 성공하였다. 근대화로 축적된 경제력과 무력을 가지고 조선반도를 병탄하고 중국 대륙을 침략하였다. 그 제국주의 침략 과정에서 독도도 몰래 편입하였다.
당시 유럽 강대국들이 갔던 길을 따랐을 뿐이라고 항변하지만, 일본의 불행은 바로 거기서 시작하였다. 물리적 힘으로 문화적 스승들을 능멸한 것이다. 동양사회에서 스승은 부모와 같다. 그 부모와 스승이 아무리 가난하고 뒤처졌어도 인륜을 부정할 수 없다. 여기에 심리적 죄책감이 작용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일본은 역사왜곡이 필요하였다. 스승의 나라를 병탄하고 지배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일본 야마토 민족 지상주의의 역사를 만들어냈다. 인류역사의 흐름에 역행하는 신화를 만들어 소위 황국사관을 조성하였다. 아직도 그 왜곡된 사관의 영향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필자는 작년 11월 일본 도쿄에서 개최된 세미나에서 아베 총리가 ‘한·일 간 긴밀한 협력이 필요하고 한국과 정상회담을 하고 싶다’고 하는 매우 적극적인 연설을 들었다. 그에 이어서 주제발표를 한 일본 국수주의 학자의 주장이 한국 참석자들을 경악시켰다. ‘스페인 정복자들이 잉카제국을 멸망시킨 것에 비교하면 일본의 조선 식민통치는 심한 것이 아니다’, ‘일본의 전범문제는 1937년부터 전쟁관계에 들어갔던 중국은 몰라도, 당시 식민지 상태에 있었던 한국은 거론할 여지가 없다’는 취지였다. 물론 한국 측 참석자들이 크게 반발하였다.
1990년 이후 장기 경제정체에 풀이 죽은 일본인들에게 아베노믹스로 희망과 자신감을 주려는 것은 이해할 수 있다지만, 열등감에서 시작된 왜곡된 역사관으로 일본 국민들을 국제사회에서 웃음거리로 만들려는 우민정책은 하루속히 버리는 것이 좋다. 일시적으로 앰플 주사 효과는 얻겠지만 국제 정세를 모르는 외톨이 신세를 자초하게 된다.
역사를 직시할 용기가 없는 민족은 위대한 민족이 될 수 없다. 피해자였던 식민지 국민들의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없다면 결국 갈라파고스의 도마뱀 신세가 될 것이다.
김석우(21세기국가발전硏 원장)